소 쟁기에서 경운기로, 다시 트랙터로

[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⑨

  • 입력 2019.11.10 18:00
  • 수정 2019.11.10 19: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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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경운기를 타고 마을길을 지나고 있는 김상만 노인회장님. 한 때는 농사일의 주역이었고 이제는 트랙터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여전히 길이 험한 곳에서는 운송용으로 이것 만한 게 없다 합니다.
경운기를 타고 마을길을 지나고 있는 김상만 노인회장님. 한 때는 농사일의 주역이었고 이제는 트랙터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여전히 길이 험한 곳에서는 운송용으로 이것 만한 게 없다 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농사에 농민만큼 중요한 것이 농기계가 아닐까요. 인구의 고령화뿐만 아니라 소멸 위기까지 맞물려 있는 농촌에서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탓에, 품을 크고 작게 줄여주는 농기계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습니다. 농촌에서 쓰는 ‘농기계’엔 무엇이 있고, 농민에겐 어떤 의미인지 공부했습니다.

 

지난 번 방문 때 들녘을 누비는 콤바인이 여간 신기했던 저는 이참에 농기계에 대해서 좀 더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오늘날 농사를 이야기할 때 농기계는 빠질 수 없으니까요. 안개가 자욱했던 11월 초순의 어느 날, 관지미에선 김장을 준비하느라 알타리 무를 손질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김상만 노인회장님·강창성 할머니 댁을 찾아갑니다. 마을에서 가장 농사를 오래 지어 농기계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죠. 부부 역시 마당에서 알타리를 손질하고 있어, 저도 눌러 앉아 장갑을 끼고 알타리를 만지며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여쭙기 시작합니다.

마당에는 20년은 족히 넘었을 노인회장님의 자가용 ‘현대 갤로퍼’와, 그보다 좀 더 넓은 폭을 자랑하는 트랙터·이앙기·콤바인 세 농기계가 쇠파이프 기둥으로 받친 슬레이트 지붕 아래 놓여있습니다. 지난 호에 추수 풍경을 담으며 언급했던 바로 그 벼농사용 농기계 3종 모둠입니다.

트랙터는 밭농사에도 요긴하게 쓰이지만, 나머지 둘은 아예 각각 모심기와 추수 작업에만 쓰이는 벼 전용입니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3종을 전부 갖추고 있는 농가인데, 본인이 기계를 잘 다루기도 하고 50년을 농사 짓다보니 결국엔 차츰차츰, 셋 다 마련하게 된 것이지요.

“콤바인은 등록은 2001년엔가 했는데 실제로는 더 오래됐지. 저것들뿐만 아니라 작은 것들까지 다 합치면 농기계만 열 개쯤 될 걸?”

비록 크기는 작지만 부부에겐 이 셋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경운기입니다. 전 국민이 이름만 들으면 알 초장수 농촌드라마 두 작품 덕에 ‘농촌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는 물건이죠. 저도 농촌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저 셋보단 경운기가 친숙했는데, 사실 이것을 왜 쓰고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일단 짐칸이 달렸으니 운송에 쓰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제 시야에 들어오는 저 1톤 트럭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경운기가 그렇게 참 잘 나온겨. 모든 짐을 그걸로 운반을 하니까.”

“아니 근데, 짐칸이 훨씬 크고 편한 트럭이 있잖아요.”

“트럭은 땅이 조금만 질어도 못 들어가. 논 같은데도 바싹 말라야 가지. (예를 들면) 논둑에 심은 들깨 들고 나올 때 말이야. 근데 얘는 어디든 가서 싣고 나오거든. 마른 데나 차를 쓰지, 그냥 트럭으로 들어갔다가 애 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여.”

경운기 얘기가 나오자 강창성 할머니가 쉴 새 없이 찬양을 잇습니다. 경운기하면 으레 떠올리는 그림에는 늘 뒤편의 짐칸(트레일러)이 포함돼 있지만 이는 사실 경운기가 도로 위에서 굴러가기 위해 뒷바퀴를 달고 그 위에 적재함을 갖춘 형태입니다. 본래는 소 대신 밭을 갈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이 때는 사람이 서서 직접 앞머리를 밀며 밭을 갈았다고 하네요. 상상만 해도 힘들지만 소로 쟁기질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당시로서는 엄청난 혁신이었다고 합니다. 이 작업은 1990년대를 전후해 트랙터로 한 번 더 대체됐고, 그래서 경운기는 이제 험지·단거리 운송 전용으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모내기 역시 이앙기가 나타났고, 수확도 탈곡기를 거쳐 콤바인이 등장한 뒤 점차 대형화되며 적은 인원으로도 제법 할만하게 바뀌어 왔습니다.

앞서 트랙터는 다른 두 녀석과 달리 밭농사에도 쓰인다고 했는데, 이는 트랙터가 경운기의 뒤를 이어 땅 가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논·밭갈이 작업을 위해 트랙터를 살 때는 본체 이외에도 외부에 장착할 로더·로터베이터(일명 로터리)·쟁기를 함께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제 슬슬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로더는 짧은 팔이 달린 바구니로, 트랙터 앞머리에 달아 토사나 장애물 등을 밀어내거나 담아 옮길 수 있도록 합니다. 뒤에 달아 끄는 쟁기는 단단한 땅을 갈아엎고, 로터베이터는 그 과정에서 나온 뭉친 흙덩어리를 회전하는 칼날로 갈아 잘게 부스러뜨립니다.

비포장에 경사가 많은 농로를 다닐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장비들을 모두 트랙터의 동력을 통해 운용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덩치는 크고 엔진의 힘은 셀 수밖에 없는 것이죠. 건초뭉치를 만들기 위해 다는 집초기·베일러·랩핑기 등 또 다른 많은 장비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보통은 노인회장님처럼 이 세 가지는 필히, 우선적으로 마련한다고 하네요.

이런 저런 설명을 들으며 계속 채소를 손질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관지미는 음성군 대소면과 인접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농사짓는 신윤철(72)씨입니다. 차에서 내린 그의 손에는 A4 용지가 두 장 들려 있었습니다.

이웃마을에서 찾아온 농민이 ‘선배’에게 트랙터 견적서를 보여주며 도움을 구합니다.

“형, 내가 견적서를 두 군데서 받아왔는데 뭐가 나을지 해서. 가격 차이가 좀 나서….”

“로더가 바가지 아녀? 로더가 340만원, 로터베이터가 로타리지. 368만원….”

‘농기계 전문가’라는 명성을 우연찮게 확인하는 행운이 왔습니다. 트랙터를 사려고 농협 농기계 센터 두 곳에서 견적을 받았는데, 본체가 같은 기종임에도 견적에서 큰 차이가 났답니다. 그래서 노인회장님이 농기계를 잘 아니, 마을에 들러 물어보러 오신 것이죠. 농사를 오래 지은 분처럼 보여 트랙터를 바꾸시는 거냐고 여쭈니 돌아온 대답은,

“아 나는 뭐냐면, 이제 또 논을 갈아야 하잖아. 논은 50마지기 정도 되고, 남 기계 돈 줘가면서 했는데 좀 그렇더라구. 쌀금은 하락인데 로터리 비용이 자꾸 올라가. 할 수 없이 사는 거지. 빨리 사야지. 트랙터는 처음 사는 거야.”

“이쪽은 조합원 환원사업이 있어서 1,000만원 정도 돌려받을 거야. 그래도 이쪽이 더 싸네. 한번 물어보고 맞으면 이쪽이 낫겠네.”

중형 55마력 트랙터의 가격은 3종의 추가 장비를 합해 4,500만원. 그리고 또 다른 견적서에는 6,000만원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노인회장님도 그렇고 일반적인 중소 농가들이 흔히 쓰는 국산 중형 55마력 트랙터입니다. 승용차 석 대는 살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을 접하니 쉬이 사지 못했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거기에 농기계는 트랙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또 농사지으려면 큰 것들만 필요한 게 아니라 합니다. 등에 매는 가방형태의 농약살포기와 비료살포기, 콩 탈곡기, 농산물 건조기, 경운기 앞머리와 비슷한 형태로 조금 더 조그마한 관리기(밭에 둔덕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는데 쓰인다고 하네요) 등… 우사 옆 창고로 가보니 일일이 가격을 물어보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 차 있습니다. 열 개도 넘는다 함은 이 녀석들을 두고 한 말씀이었겠죠.

“이 모든 장비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지금 와서 수작업으로 할 수도 없고. 서울 사람들이 귀농한다고 ‘시골 와서 농사나 지어볼까’하는데, 잘 생각해봐야 돼. 애 먹어.”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를 겪은 우리나라에서 농민으로 살아남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익히 듣고 배워 알고 있는데요, 비교적 말끔한 트랙터에서부터 낡은 콩 탈곡기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에 걸쳐 마당에 늘어선 농기계들은 노부부가 농사로 버텨 온 세월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마을길에 트랙터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여러 쓸 일이 많은 트랙터는 결국 하나 산다고 하네요.
마을길에 트랙터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여러 쓸 일이 많은 트랙터는 결국 하나 산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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