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잊지 않겠습니다

  • 입력 2019.11.10 18:00
  • 기자명 한영미(강원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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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강원 횡성)
한영미(강원 횡성)

시댁식구들은 모두 광주에 산다. 울화통이 터져 못살겠다고 매주 상경해 서초동으로 여의도로 간다. 여든이 다 돼가는 어머님도 집회에 올라오셨다. 학생운동, 농민운동 하는 아들을 평생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느라 속이 시커매진 어머니가 서울집회에 참석하시는 것이다. 어린 조카들까지 서울에 온다.

몸도 안 좋으신데 그냥 계시라는 아들 말에 “내 발로 내가 가고 싶은 곳도 못가냐?” 하시면서 올라오는데 지난주엔 가족들이 찢어져 여의도와 광화문집회에 각각 참여했다.

난 이왕 광화문에 갔으니 조금 걸어 인사동도 들르고 조계사도 들르고 일본대사관도 들러보고 서울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이었으나 지하철에 내리자마자 맞딱뜨린 수십만 보수세력들이 쏟아내는 욕지거리를 듣다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사람으로선 하지 못할 말들을 지껄이고 광화문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손가락질은 물론 태극기를 돌돌 말아 무기처럼 콕콕 찌르며 “이 빨갱이들아 북한으로 가라”는 해코지를 받을 때는 소름이 돋아 저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웃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며 속으로는 ‘***년놈들’이라 쌍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냈지만 한숨이 나고 답답해졌다.

집회에 참석한 가수 안치환은 광화문의 이 상태를 ‘카오스’ 라고 이야기한다. ‘나만 답답한 것이 아니었구나! 다들 힘들었구나!’ 위로가 됐다.

그래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힘이 되고자 한다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함께 집회에 참석한 지인은 태극기를 찾아와야 한다고 기어이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태극기를 하나 얻어 태극기를 되찾았다고 웃고, 부모 따라 나온 어린 아이들은 뛰어놀고, 청년학생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집회가 끝날 무렵에 ‘아 이러면 되는구나! 답답하다 하지 말고 아이들 손잡고 웃으면서 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은 지난번에 참여한 서초동집회는 워낙 사람들도 많았고 서울집회는 처음인지라 정신이 없었던 반면, 광화문에서 조촐하게 열렸지만 광주학생의거결의대회, 세월호 책임자 고소고발인대회를 참석하시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집회라고 하신다. 광화문에 와서 좋았다고 하신다. 보수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광화문광장을 이승만광장이라고 부른다는데 되찾고 지켜야 할 일들이 더 생겼다고 하신다.

태극기, 광화문광장, 또 빨갱이 소리에 주눅 들어가는 자존감 등 다시 되찾아야 할 것이 많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정리해야 할 일도 많고 농사일이 한창 바쁘고 개도국 지위 포기 등 농업현안을 둘러싼 일로 인해 놓치고 사는 것이다.

횡성 행인서원에서 횡성의 청소년들과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어 나눠 먹고 있으면서도 세월호 대책위에서 하는 일들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아직 살아있는 학생이 헬리콥터를 타지 못하고 배에 옮겨 타느라 다섯 시간이나 걸려 결국 숨졌다는 내용은 설마설마 했던 일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줬다. 세월호 책임자들을 조국처럼 수사하라는 세월호 유가족의 절규가 가슴에 맺힌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약속 “다시는 잊지 않겠습니다.”

나 한영미는 세월호 책임자 000을 고소·고발합니다. 수없이 많은 000을 고소·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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