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소농의 가치, WTO에 직접 반영해야

  • 입력 2019.11.10 18:00
  • 기자명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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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지난 2001년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시작해 그 이름도 ‘도하 라운드’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진행 중이다. 그 출발은 개발도상국들이 무역의 이익을 누리고 개발될 수 있도록 국제무역질서를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협상을 ‘도하 개발 아젠다(DDA)’라고도 부른다. 미국의 일방주의로 협상 타결이 언제 될지 불투명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요구와 역할을 중시하는 협상이다.

지난달 25일 정부가 이 협상에서 농업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협상에서 쌀을 비롯한 민감 품목을 보호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정부의 발표는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국제법적으로 본다면 발표 자체에 한국이 법적으로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WTO 농업협정에서 한국은 협정이행표를 개발도상국에게 적용하는 농산물 관세율과 농업 예산으로 편성했다. 현재의 개발도상국 지위는 변함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권리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또 발표에는 쌀 등 민감 품목을 협상에서 보호한다는 전제가 있어, 미래에 도하 라운드 농업 협상이 어떤 내용으로 타결되는가에 따라 방침을 다시 세울 여지도 있다.

나는 발표 이후 정부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법적으로 더 의미있는 것은 선언보다 행동이다. 한국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WTO 농업 협상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 그룹인 ‘G33 국가’의 일원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한국은 WTO 농업분야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이 지위를 포기하지 않았다. G33 국가 그룹에서 한국이 할 일이 있다. 소농의 가치를 WTO에 직접 반영하는 일이다.

농업분야 개발도상국의 의의는 무엇인가? 아시아 소농이 카길,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 농기업들과 공정하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적 약속이다. 이는 한국이 선진국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이 선진국 모임인 ‘OECD’와 ‘G20’ 나라에 속하는 한국이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란 말인가 하고 놀란 듯이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소농의 본질과 그의 역할은 그가 속한 사회가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은 카길이나 몬산토가 아니라 세계의 소농들이 지킨다. 소농은 땅과 종자, 그리고 지역에 맞는 농법 지식을 몸에 지니면서 지역 농업을 담당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2018년 9월 28일에 채택한 ‘농민 농촌노동자 권리 선언’이 있다. 이 역사적인 국제 규범을 정립하기 위해 한국의 소농은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힘써왔다. 선언은 소농의 먹거리 공급 및 농업생산 기반 생물 다양성 보존 공헌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핵심인 식량보장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는 데 소농이 이바지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모든 유엔 회원국에게 모든 농민 농촌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소농이 중요하다. 개도국은 이를 지키는 하나의 장치였다. 한국은 G33에서 소농의 가치를 WTO에 직접 반영할 필요가 있다. 도하 라운드가 타결돼 만들어질 농업협정에서 개도국 지위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소농이 지속가능한 WTO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2005년 전북 학교급식조례에 대해 대법원이 무효 판결을 내리자, 한국의 소농과 시민사회는 정부에 요구해 아예 WTO 협정을 바꿔 학교급식에서는 우리 농산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농의 가치는 그가 속한 나라가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중요하다. 선진국에 있든, 개도국에 있든 소농의 본질과 그 공헌을 인정하는 WTO 체제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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