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에 ‘중국산 무’ 반입 충격

중도매인이 자의적으로 수입무 정가·수의매매 시도
관리공사·도매법인 만류로 거래 무산, 그대로 반출
유통인 모럴해저드, 정가·수의매매 편법운영 드러나

  • 입력 2019.11.07 19:22
  • 수정 2019.11.10 09:0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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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락시장에서 중국산 신선무가 거래될 뻔한 일이 발생했다. 비록 거래는 무산됐지만 기어코 공영도매시장에 수입무가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농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또한 수입무 반입 과정에서 도매시장 거래제도의 편법운영 실태까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올 초부터 줄곧 폭락에 시달리던 무 가격은 최근 태풍 등의 영향으로 일시 상승해 있다. 이미 작황 피해를 크게 입은 농민들은 가격 상승을 틈타 수입까지 확대되지 않을까 경계심을 품어왔다. 지난달 초 평택항에 입항한 중국산 신선무 사진이 나돌면서 산지의 긴장감은 극대화됐고, 무·배추 출하자조직인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한유련)는 “수입산을 하나라도 취급하는 도매법인엔 출하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가락시장에 중국산 신선무가 들어온 건 이런 시점이었다. 지난 4일 오후 2시 30분경 가락시장 A도매법인 경매장 밖 B중도매인 점포 앞에 ‘원산지:중국’으로 표기된 신선무 약 200박스가 적치된 사실이 확인됐다. 업체 등을 통해 외부에서 유통되던 수입무가 버젓이 도매시장으로 들어와 국산무 시세에 직접 영향을 끼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이 중국산 무는 시장 내의 시선이 집중되자 거래되지 못한 채 저녁 7시경 그대로 반출됐다.

지난 4일 가락시장에 반입된 중국산 신선무. 약 200박스의 수량이며 거래되지 못하고 도로 반출됐다. 거래는 불발됐지만 사건의 전말은 농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기고 있다. 가락시장 유통인 제공
지난 4일 가락시장에 반입된 중국산 신선무. 약 200박스의 수량이며 거래되지 못하고 도로 반출됐다. 거래는 불발됐지만 사건의 전말은 농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기고 있다. 가락시장 유통인 제공

가락시장에서 무는 의무상장품목이다. 도매법인을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매장 밖에 적치돼 있었다는 점에서 경매에 출하됐을 가능성은 낮고, 정가·수의매매 거래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이를 부정했다. A도매법인 측은 “잘못들어온 물건이다. 거래하려 해도 살 만한 중도매인도 없다”고 일축했으며 B중도매인도 “모르는 일”이라고 짧게 답변했다.

해당 수입무를 가락시장에 보낸 수입 유통업체 C사는 “배송기사가 연로해 배송을 잘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가락시장은 그 광활한 면적에 ‘가락동 600번지’라는 하나의 주소가 매겨져 있고 중도매인 점포는 배송기사가 일일이 호수를 찾아가야 한다. B중도매인과 C사는 기존에 거래한 적도 없다고 했고, 그렇다면 배송착오였다는 해명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의혹은 B중도매인이 전말을 밝히면서 비로소 풀렸다. B중도매인은 본지와의 세 번째 전화통화에서 중국산 무를 정가·수의매매로 거래하기 위해 들여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가·수의매매의 주체인 A도매법인엔 얘기하지 않고 C사의 수입무를 임의로 반입해 적치했으며, 공사와 A도매법인의 만류로 인해 거래를 포기하고 반출했다는 것이다.

결국 사건의 본질은 농민들에 대한 시장 유통인들의 ‘동업자의식 결여’다. B중도매인은 농민들과 상생해야 할 공영도매시장 중도매인으로서 가을무·월동무 농가가 처한 극악한 상황과 출하자조직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수입무 반입을 통해 영리를 추구했다. B중도매인과 C사는 이같은 사실을 은폐하려까지 했다.

더욱 뼈아픈 건 도매시장 거래제도의 편법운영이다. 정가·수의매매는 본래 도매법인이 출하자·중도매인과 각각 가격과 수량을 협상해 거래를 중개하는 것인데 이번 사태에선 중도매인이 출하자와 직접 접촉해 거래를 결정했고, 이렇게 되면 도매법인은 아무 역할도 않고 수수료만 받아 챙기게 된다(통칭 기록상장). B중도매인은 정가·수의매매를 계속 이같은 식으로 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공사와 도매법인이 거래를 만류했다’는 건 공사도, 도매법인도 이미 어느 정도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A도매법인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거니와, ‘도매법인 업무검사기간’을 핑계로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공사도 업무를 방기한 측면이 있다. 그간 기록상장에 협력해온 도매법인은 물론 공사 역시 과도한 잡음이 생기는 걸 무마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가락시장 수입무 반입 사태는 농민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기게 됐다. 애써 길러낸 농산물을 팔아주는 유통인들도, 그들을 관리하는 공사도 농민들의 신뢰를 크게 저버리는 상황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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