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대담] “농민은 ‘국토공무원’ … 농민수당, 국가사업으로 확대해야”

“농민은 우리 역사의 근간 … 청년들 농촌서 보람차게 살도록 지원해야”
남녘 창고서 쌀 썩어나는 현실 성토 … “미국 눈치 그만보고 남북교류 당장 재개해야”
‘농민의 날’, 동학농민혁명의 결정적인 날 중 하나로 바꾸자는 제안도

  • 입력 2019.11.03 18:00
  • 수정 2019.11.03 19:47
  • 기자명 심증식 편집국장,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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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심증식 편집국장, 정리 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도올 김용옥 선생은
도올 김용옥 선생은 "우리 국가의 근간은 농민이며, ‘민중’이라는 개념의 핵심 모델 또한 영원히 농민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주체세력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농민"이라고 강조했다.

촛불혁명 직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3대 과제 중 하나로 ‘풍요로운 농촌 건설’을 강조한 이유가 궁금하다.

농촌문제를 해결해야 남북화해와 경제민주화 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 농촌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가장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곳인 양 인식된다. 농촌은 국가의 기본이자 존재 자체가 국민의 권리이며 식량 공급의 장일 뿐 아니라, 국토를 보전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집권자들 입장에서 농민이) 힘없고 맥아리 없다 여겨 그들을 무시하고 짓밟아버리고 있다.

농촌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은 우리 역사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일본이나 중국, 유럽에선 농촌을 잘 살리기 위한 정책들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찌하면 농촌을 죽이고 농촌을 어떻게 더 축소시켜 다른 이득을 취하나, 이것만 구상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앞날이 암담하다.

우리 역사 속에서 농민들은 동학농민혁명, 의병운동, 일제강점기 소작쟁의, 해방 후 민중항쟁,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등을 통해 큰 역할을 해 왔다. 최근엔 백남기 농민이 촛불혁명의 밑불이 되기도 했다. 역사 속에서 한국 농민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비록 농민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소수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국가의 근간은 농민이며, ‘민중’이라는 개념의 핵심 모델 또한 영원히 농민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주체세력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농민이다.

급격하게 농민 인구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농민과 농업 비중을 줄였기에 우리가 산업화·도시화·공업화를 잘 추진할 수 있었다는 황당한 논리가 우리나라의 사회과학 연구하는 사람들을 지배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농민 수가 축소된 건 역사의 추세에 의해 그리 된 것이지 구태여 농민 인구를 줄임으로써 경제적 부가 생겨난 역사라 해석할 순 없다. 농민은 어디까지나 우리 국토를 지키는 주체이기에 그들을 경제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농촌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자 정신사적인 모든 가치를 담보하고 있는 가치체계다. 우리가 미래사회를 그릴 시 빈부격차 해소, 자연과의 공생, 공동체적 삶 등 모든 미래적 가치의 모델도 농촌일 수밖에 없다. 농촌은 한국 역사에서 출발이자 영원한 종착지다. 21세기라 해서 농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만 해도 농촌을 지키기 위해 현명한 국가정책을 써 오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표현에 대해 한 마디 붙이자면, 사실 역사학계에서 ‘동학농민혁명’이라 부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농민 뿐 아니라 수운 최제우 선생 등 당대 지성인을 비롯해 국민 전체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다만 써도 괜찮겠다고도 여기는 건, 최근 농민들이 하도 핍박받으니 그 사건을 일컫는 용어라도 ‘농민혁명’으로 쓰는 게 농민문제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용인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농민수당 운동이 번지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보장하고 증진해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자는 농업부흥운동인데, 앞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대국민 메시지를 부탁드린다.

농업이라는 게 진짜 어렵다. 나도 농사를 서울 한복판 작은 밭에서 짓고 있지만, 이 작은 밭 하나 관리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

그래서 농민수당이 공론화되기 20년 전부터 나는 농민을 ‘국토공무원’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를 지키는 공무원으로서 공무원 수당을 줘야 한다고 20년 전부터 외쳤다. 공적인 사업을 하니까 준공무원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농촌문제에 대해 우린 너무 모른다. 농촌문제가 (정치인들의)표에 연결되지 않아 농민문제를 모르는 것이다. 국회에서 농민 비례대표 수를 최소한 3자리는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농촌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을 주는 캠페인 내용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 이건 정당 간 시비가 있을 수 없는 문제라 쉽게 합의 가능하다고 본다. 농민수당도 지자체만의 사업이 아닌 국가사업으로,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보람찬 삶을 살도록 국가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농촌에서 다시금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나오는 역사가 시작돼야 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더 많은 사람을 이농시켜야 한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농민들이야말로 국가의 근간을 지키는 지킴이들이고 농업은 우리 문화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며 “어렵더라도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 날 대담엔 박형대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함께 자리했다. 한승호 기자
도올 김용옥 선생은 “농민들이야말로 국가의 근간을 지키는 지킴이들이고 농업은 우리 문화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며 “어렵더라도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 날 대담엔 박형대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함께 자리했다. 한승호 기자

오늘날 우리 농업의 위기로서 수입개방 문제가 대두되는데, 농업은 상품과 경쟁의 대상이 아닌 생명과 나눔의 세계관계의 기초가 돼야 한다고 본다. 현 세계질서 속에서의 새로운 농업관에 대한 의견 듣고 싶다.

결국 그 문제는 내 제1의 주장인 남북화해문제와 연결된다. 지금처럼 반공을 국시로 한다는 건 미국 말을 고분고분 듣겠다는 뜻과 같다. 미국은 농업을 무기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나라다. 온갖 흉악한 사람들이 미국의 대규모 농업과 결탁해 정가를 주무르고 있다. 농업마피아가 미국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도하게 미국 말을 듣고 있다. 안 들어도 될 것까지 너무너무 잘 듣는다. 이제는 미국을 들이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 미국 종노릇을 할 순 없다. 우리도 이젠 주체적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하고, 해야 할 말은 국제사회에서 정확하게 해야 한다.

농업문제와 관련해서도 정책입안자들의 확고한 인식이 없기에 우리나라는 농업문제를 미국에 무조건적으로 양보해왔다. 우리 농민들은 그 과정에서 항상 희생됐다. 정부는 농민들의 희생을 통해 대기업들의 국제적인 무역활동을 도왔다. 식량자급률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농촌문제를 깊게 이해하는 정치가가 나와야 한다. 이게 내 소망이다. 농촌문제를 단순한 이권문제, 경제적 이익의 흥정대상으로만 볼 게 아닌, 국가의 확고한 근간정책으로 인식하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난감한 문제지만 나라도 그걸 계속 외쳐야 하지 않나 싶다.

농민운동 세력은 통일운동에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통일의 시작과 끝은 식량이라 보고 있으며, 제일 먼저 농업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농민들의 입장이다. 통일과 농업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여쭙고 싶다.

나는 농민들만이라도 확고하게 통일문제에 대해 진취적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통일은 농민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활로다. 북은 농촌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고, 아직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땅들이 많다. 북의 농지를 어떻게 건강하게 가꿀 것인지가 앞으로의 화두다. 북이 호락호락하게 내 줄 리도 없지만, 지금 남쪽에서처럼 대기업이 투자하는 식으로 북의 국토를 자본주의화하는 건 우리 역사 최악의 재난이다. 이는 막아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북녘 사회를 생태적 공동체로서 발전시킬 것인가, 이게 우리 역사의 관건이라 생각한다. 북녘 사회를 어떻게 환경의 이상향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예컨대 DMZ를 세계인들이 어떻게 평화의 땅으로 만들지에 대해 여러 구상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북의 농촌을 어떻게 우리 미래의 이상향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피폐한 남쪽의 모델이 아닌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북은 ‘깡’이 있으니 미국의 말을 안 들어도 되는 만큼, 북의 농촌모델이 인류의 새로운 농촌모델이 됐으면 한다. 한국의 농민들이 그 동안 통일운동을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북녘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새 비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도올 김용옥 선생은 "농민들만이라도 확고하게 통일문제에 대해 진취적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통일은 농민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활로"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뭘 해야 할까?

남녘의 창고에 썩어나는 쌀을 보존하는 데 한 해 들어가는 돈만 6,000억원이라 한다. 이런 미친 놈들이 어디 있나. 빨리 북과 소통해서 북녘 사람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북녘의 희귀한 광물을 그 대가로 받는 등의 남북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우린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측에서 만들었던 금강산 내 시설을 다 철거하라고 한 것을 욕하면 안 된다. 얼마든지 관광은 재개할 수 있음에도 (남측에서 재개를) 안 했다. 미국 입김에 놀아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먼저 해야 한다. 2010년 이명박정권의 5.24조치 이후 일체 교역이 중단된 걸 빨리 대통령 힘으로 재개해야 한다. 청와대에선 유엔 제재 핑계 대면서 무슨 소용 있냐고 하는데 웃기지 마라. 그 유엔 제재부터 우리가 풀 수 있는 걸 풀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도 재개해야 한다. 개성공단은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있었던 걸 회복하는 건데 그것도 안하니 답답하다. 북측 입장에선 항변할 만하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북측이 남측을 능멸한 것보단 남측이 북측을 능멸한 게 많다. 이는 객관적 사실이다. 이런 말 하면 또 나를 죽이려 들겠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북이 워낙 어렵게 돌아가니 그냥 깔보고, 인간답게 대접 안 하고 “저 나쁜 새끼들”, “저 빨갱이들” 이러고만 있으니 남북 간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남북의 미래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남북교류를 재개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북에 대한 경제개발이 북의 농촌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생태문명 선진국이 될 기회를 잃어버리는 만큼 이 점도 유의해야 한다.

오는 11일은 농민의 날이다. 정부에선 ‘농업인의 날’이라 부르지만 이는 올바른 명칭이 아니라고 본다. 올해 농민의 날을 맞이하며 드는 소회는?

11월 11일은 사실상 빼빼로데이로 인식돼 버린 날이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의미있게 동학농민혁명의 결정적인 날 중 하루를 골라 기념일을 다시 지정했으면 좋겠다.

농민의 날을 새로 정하는 운동도 좋은 캠페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와 함께 농민의 날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는 행사들을 기획해보자. 지자체에서 선거용으로 만드는 이벤트가 너무 많다. 좀 더 머리를 써서 국민들이 농민을 존경할 수 있게끔 기발한 이벤트를 구상해 보자.

‘농업인의 날’이란 말도 바꿔야 한다. 순수하게 농민의 날이라 해야 한다. 농업인이란 말은 산업적 관점과 결부된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한다. ‘농민’이다. 민중(民衆)의 ‘민(民)’이다. 업(業)이란 말이 들어가선 안 된다.

농민들에게도 힘주는 말씀 부탁드린다.

농민들이야말로 지금 국가의 근간을 지키는 지킴이들이다. 어렵더라도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농업이라는 건 우리 문화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무너지면 안 된다. 농민들이 열심히 이 나라를 지켜주길 바란다. 조그마한 불씨라도 지키고 있어야 나중에 큰 들판을 태울 수 있듯이, 지금 여러모로 어렵더라도 그 조그마한 불씨를 지켜달라는 당부를 농민들께 드리고 싶다.

덧붙여서, 앞으로 내 구상 중 하나가, 황당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농업과 농민, 농촌이 살려면 서울대를 없애고 모든 국립대학을 서울대처럼 만들자”는 것이다. 서울대를 해체시키고 전국 국립대학의 힘을 동일하게 키우자는 것이다. 나는 그걸 옛날부터 주장해 왔는데 그리 되면 농촌문제, 교육문제, 지방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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