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정부는 포기만 할 것인가?

  • 입력 2019.11.03 18:00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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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WTO 개발도상국 지위와 관련 “미래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고 이후 브리핑을 통해 발표했다. 지난 7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개도국 지위 포기를 요구 받은 지 3개월만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무기력하게 굴복한 것이다. 미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압력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한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OECD에 가입하면서 농업부문에만 개도국 지위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 23년간 유지해 왔던 개도국 지위도 반납했다. 정부는 이 모든 것을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포장했다. 그렇다면 농업을 보호하는 것이 국익을 해친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통상협상 때마다 정부는 ‘국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농업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다.

현 시점에서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이 당장 농업의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질 일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고 책임질 수도 없다. 언젠가는 피해가 현실화 돼 수입농산물의 관세가 대폭 내려가거나 수입쌀이 물밀 듯 들어오고, 보조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과연 우리 농업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겠는가.

결국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에 극렬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이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지난 3개월간 정부는 농민들과 실질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단지 정부가 급조한 간담회에서 정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뿐이다. 절차적 필요에 의해 농민단체를 동원하는 것에 그쳤다.

또한 발표된 대책은 이미 추진되고 있는 정책을 재탕 삼탕한 것에 불과했다. 사실상 국민을 속이고 농민들을 우롱한 것이다. ‘당장 피해가 없고 향후에도 큰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정부는 통상협상과 관련해 농업문제는 항상 안일하고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해 왔다. 그로 인해 우리 농업이 이 꼴이 된 것이다.

누가 미국 대통령 말 한마디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것을 상상이나 했겠나. 국제관계는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개도국 포기가 당장은 영향이 없다지만 언제 어떠한 영향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백번 양보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면 거기에 상응한 우리 농업의 장·단기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3개월을 허송하면서 아무런 대책을 만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농민들과 중지를 모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기회에 좌초돼 가는 농정개혁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이 나설 것을 촉구한다. 검찰개혁 하듯 강력한 농정개혁 의지를 밝혀야 한다. 농업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개방농정을 철폐하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농정개혁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묻고 점검해야 한다. 농업 회생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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