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제41회] 항일연군과 허형식 장군

  • 입력 2019.11.03 18:0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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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농민소설가 최용탁님의 근대사 에세이를 1년에 걸쳐 매주 연재합니다. 갑오농민전쟁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대사를 톺아보며 민족해방과 노농투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3로군 총참모장 시절의 허형식.
3로군 총참모장 시절의 허형식.

 

일제는 1938년에 ‘간도특설대’라는 부대를 창설한다. 괴뢰국인 만주군에 속한 부대로 부대원의 다수가 조선인이었다. 이 부대의 목적은 만주 지역의 독립군, 특히 일제를 곤경에 빠뜨렸던 항일연군의 소탕이었다. 조선의 독립군은 조선인이 없앤다는 기치 아래 많은 친일군인들이 이 부대에서 활약했다. 소위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는 백선엽을 위시하여 수많은 국군 창설자들이 간도특설대 출신이고 그들은 전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었다. 독립군을 때려잡던 가장 악랄한 친일파들이었다.

일제가 그토록 토벌하고자 했던 항일연군은 중국과 조선의 독립군 연합부대로 제1로군, 2로군, 3로군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모두 흑룡강성에 있었고 조선과 가까운 1로군과 2로군에 특히 조선인이 많았다. 하얼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3로군에도 조상지, 이복림, 김책 등의 조선인이 있었는데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구미 출신의 허형식 장군은 실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3로군 총참모장으로 최고위급의 지도자일뿐 아니라 그 가계에서부터 피어린 우리 독립투쟁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형식은 1909년에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허필은 바로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인 의병장 왕산 허위의 사촌동생이었다. ‘광야’의 시인 이육사와 어머니쪽으로 오촌간이기도 했다. 독립투쟁사에 빛나는 두 집안을 친가와 외가로 두고 태어났던 것이다. 일제의 탄압에 1920년 가족은 만주로 망명하였고 허형식은 스물한 살 되던 해인 1930년 ‘5·1절 시위행진’을 계기로 항일운동 전면에 등장하였다. 그는 조선인 청년 40여명을 규합하여 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을 습격하여 수감되었고 감옥에서 당시 항일연군의 수령격인 조상지와 항일투사 김책을 만난다. 김책의 소개로 1935년 1월 동북항일연군 제3군 산하 제2연대장에 부임한 그는 이듬해 부대 재편성으로 제3사를 지휘하면서 일약 조상지 다음가는 지도자로 떠올랐다.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1936년 가을 일본군이 삼강성 일대의 항일세력 토벌에 나서자 그는 선발부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교전, 일본군 80여명을 사살하고 말 30여필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1937년 2월 북만지방의 항일연군회의가 열렸을 때 그는 북만 항일연군 총사령부 및 제3군의 전권대표로 이 회의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4월 부대를 재편성하면서 제3로군이 조직되자 총참모장 겸 제3군 군장에 임명되었다. 1940년 허형식은 일본군의 군사거점인 풍락진을 습격하여 경찰국장을 사살하고 하얼빈 일대를 점령하여 관동군을 놀라게 하였다. 그가 지휘한 제3로군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300여 회의 전투를 벌여 이 일대 27개 도시를 점령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3로군은 기차역 5곳, 일본의용대훈련소 5곳, 비행장 1곳을 습격하여 만주군과 경찰 1,557명을 사살했으며 기관총 7정, 박격포 4문, 기타 총기류 1,500여점을 노획한 것으로 나와 있다. 엄청난 투쟁과 성과였다.

1940년대 들어 동북항일연군의 지도자 조상지와 양정우가 사망하자 대부분의 대원들은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소련 영내로 도피했다. 그러나 허형식은 만주에 남아 끝까지 일제와 맞서 싸웠다. 그는 예하부대의 소분대사업을 검사하러 나갔다가 토벌대의 습격을 받고 최후를 맞았다. 1942년 8월 3일 오전 6시, 허형식은 33세로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를 죽인 자들이 간도특설대일 가능성도 있다.

허형식은 중국인으로 잘못 알려져 우리 독립투쟁사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아버지인 허필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으나 후손을 찾지 못해 10년 가까이 방치되기도 했다. 허형식은 남한 출신으로는 극히 드물게 현재 북한의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허형식 장군의 희생지를 기리는 비석.
허형식 장군의 희생지를 기리는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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