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교수 “개도국 지위 아닌 한국농업의 지위 문제다”

“협의과정도 생략, 농민 기본권 명백한 침해”

  • 입력 2019.11.03 18:00
  • 수정 2019.11.03 19:41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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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가 아니라, 한국농업의 지위 문제였다.”

이해영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지난달 25일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발표’를 이렇게 정의했다. 이해당사자인 농민들과 일체 협의과정도 생략해 농민 기본권의 명백한 침해라는 입장도 덧붙였다.

이해영 교수는 지난달 28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우리 정부의 최근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발표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경미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 과장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 이후 정부는 어떤 절차를 밟게 되는가’ 묻자, “지금 당장 달라질 것은 없다”면서 “향후 WTO 농업협상이 진행된 뒤 어떤 결론이 나오면, 그때 개도국이 아닌 선진국 이행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이 전부다”고 설명했다. 당장 아무 피해가 없다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해영 교수는 “순전히 외부조건만 놓고 보면 당장의 변화는 없다”면서도 “더 중요한 건 국내협상이었다”고 강조했다.

국내협상이란, 국민의 일부이면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문제 이해당사자인 농민들과의 논의과정을 말한다. 농민들 생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정부와 농민들간 ‘갈등 조정’ 혹은 ‘사회 통합’ 관점의 심도 깊은 논의가 일절 없었다. 이는 곧 농민들의 기본권이 짓밟힌 상황이다.

그렇다고 국외 상황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이 교수는 “국제통상은 항상 가변적이다. 단기 혹은 중기 예측에 변화가 없을 거라는 ‘가정’ 아래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을 했지만, 이후 상황이 변할 때 결정했던 그들은 없다. 농민들한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정은 정부가 했으나 책임자들이 없다는 책임윤리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질타했다.

“그럼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 것인가” 이 교수는 반문했다. WTO 차원의 다자간 농업협상은 없을지 모르지만 양자간 혹은 지역적 그리고 복수적 협상까지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그 협상에 있다면, 과연 국내 민감 농산물에 대한 방어가 말처럼 가능한가의 문제가 남는다. 쌀 관세율 513%를 두고 정부가 큰소리치지만,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마당에 흔들거리고 무너지는 순간은 언젠가 온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이번 WTO 개도국 지위는, 개도국이냐 선진국이냐 이런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농업 현재 지위의 문제였다. 그 문제는 덮고 개도국이라는 개념과 용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우리가 왜 개도국이냐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답답해하면서 “결국 우리 농업은 국가의 보호망을 벗어나게 됐고, 한국의 산업자본이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신세가 됐다”고 우려했다.

한편 미국의 WTO 개도국 지위 압박에 우리 정부는 포기 입장을 공식 발표했고 농업계의 철회 촉구 규탄 기자회견이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반면 개도국 지위 문제에 있어 미국의 목표였던 중국은 단호했다. 지난달 26일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타임스>는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한국처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의 조치로 인해 중국이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서방 언론이 보도했지만, 개도국 지위는 미국이나 일부 서방 언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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