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도 아로니아는 ‘전쟁통’

힘겹게 이끌어낸 정부 수매폐기
수매단가 kg당 ‘1,688원’ 분통
“생산비 3,600원 보장해야”

  • 입력 2019.10.27 18:00
  • 수정 2019.10.28 10:2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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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경기 이천에서 아로니아를 재배하는 박계홍씨가 수확을 전혀 하지 못해 나무에 까맣게 달린 채 썩어가고 있는 아로니아를 보며 속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씨는 “여주·이천지역 아로니아 농가의 90%가 수확을 포기하고 손을 놔버렸다”고 말했다.
경기 이천에서 아로니아를 재배하는 박계홍씨가 수확을 전혀 하지 못해 나무에 까맣게 달린 채 썩어가고 있는 아로니아를 보며 속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씨는 “여주·이천지역 아로니아 농가의 90%가 수확을 포기하고 손을 놔버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아스팔트로 쏟아져 나왔던 아로니아 농가들이 아직도 머리띠를 풀지 못하고 있다. 생산비 미만의 극심한 폭락이 계속돼 농가가 고사하고 있지만, 힘겹게 이끌어낸 정부의 수매폐기 정책은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농민들이 주장하는 아로니아 최저생산비는 kg당 3,600원이다. 낮게는 1,000원대까지 내려간 시세에 수확 자체가 불가하며, 그 이전에 창고마다 가득 쌓인 2018년산 재고 처리조차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수확기가 두 달 이상 지났음에도 대부분의 아로니아가 나무에 달린 채 썩어가고 있다.

정부의 2018년산 재고 수매폐기는 올해 아로니아 농가에 일말의 숨통을 틔워줄 응급처방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수매단가는 겨우 kg당 2,111원이다. 농가 실수령액(자부담 제외)은 1,688원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가격이다.

생산자단체인 아로니아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완조)는 당초 kg당 3,600원의 수매가를 요구했다. 정부 수매예산이 30억원이므로 도비 40억원, 시군비 20억원을 투입해 재고물량 2,500톤(비대위 자체조사치)에 대해 생산비를 보전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확정된 수매예산은 정부 30억원에 지방비 30억원이 전부였다. 물량도 3,550톤으로 비대위 조사치보다 1,000톤 이상 많았다. 농식품부의 매 신청접수가 8월 수확기 이후로 미뤄지면서 2019년산이 상당수 포함된 까닭으로 보인다. 기대치보다 더 적은 예산으로 더 많은 물량을 수매하다 보니 단가가 낮아지는 건 필연적이다.

경기 이천의 아로니아 농가 박계홍씨와 김상구씨가 베어서 쌓아 놓은 아로니아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지원 한 푼 없이도 농가 스스로 면적을 줄여가고 있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경기 이천의 아로니아 농가 박계홍씨와 김상구씨가 베어서 쌓아 놓은 아로니아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지원 한 푼 없이도 농가 스스로 면적을 줄여가고 있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농식품부는 단순히 물량에 예산을 분할한 게 아니라 지난해 도매시장 평균가격(1,946원)을 고려한 것이라 설명했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는 크다. 농민들의 생산비를 고려하지 않고 가장 심각했던 폭락가격을 기준으로 삼은데다, 도매시장 반입률이 극히 저조한 아로니아의 특성상 도매시장 가격이 기준가격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완조 비대위원장은 “도매가격은 2013년도엔 kg당 3만5,000원까지 나갔는데 지난해 가격만을 기준으로 한 건 말도 안된다. (유사작목인) 복분자의 농협수매가 1만5,000원과 비교해도 너무 낮다”고 호소했다.

농민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기 이천의 아로니아 농가 박계홍씨는 “정부수매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가서 신청했는데 단가가 1,688원이라 하니 정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창고용량이나 저장성 문제로 농가에서 아로니아를 건조시켜 보관하는데, 건과 500kg을 생과로 환산하면 4톤인데도 그냥 500kg으로 인정하더라”라며 억울해했다.

아로니아는 여타 폭락 작목들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가격 급락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오히려 점점 줄어 현재로선 회생의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재고 수매폐기는 응급처방에 불과한 만큼 폐업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인근 농가 김상구씨는 “농민들이 지원 한 푼 없이 나무를 베어내 태우고 있다. 정부도 연내에 적극적으로 폐농을 지원해야 당장 내년 농사가 가능하다. 블루베리의 경우 폐농지원 이후 회생하고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1,688원’ 수매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여는 등 다시 투쟁에 나서고 있다. 현재 기재부와 농식품부를 번갈아 만나며 수매가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별개로 아로니아가 FTA 직불금 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한 대정부 소송도 지난 24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수확이 끝난 가을이지만 올해도 아로니아 농가는 전쟁 한복판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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