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승계농의 비애

  • 입력 2019.10.27 18:00
  • 기자명 김후주(충남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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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주(충남 아산)
김후주(충남 아산)

청년농업인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승계농들은 소위 금수저라고 불린다. 부모님 기반에서 너는 거저먹는 거다, 얼마나 편하냐는 말을 밥먹듯 듣는다.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맨주먹으로 시작하는 창농에 비해서는 안정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땅과 집이 있고 판로에서 수월한 면이 있다. 그렇다면 승계농은 아무런 문제없이 농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겉보기로는 문제가 없거나 사소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 정말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승계농들의 고충이 사적이고 은폐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세대갈등이다. 부모님은 항상 불만 어린 눈길로 자녀들을 평가하고 젊은 사람들의 게으름을 못마땅해하고 자신이 고수해온 방식을 자녀들에게 강요한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강압적인 방식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다. 가끔 농사에 도움이 될만한 좋은 마케팅이나 활동에 관심을 갖거나 참여를 하려 하면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놀러 다니지 말고 일이나 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가뜩이나 농업농촌생활도 적응하기 어려운데 부모님이 상사가 되는 순간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차라리 자식이 동네 후배였다면, 아버지가 옆집 아저씨였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서로 생각한다. 잠자는 시간부터 농사방식, 판로까지 마음 맞기가 쉽지 않다.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 공간에 정착할 수도, 집중할 수도 없게 만든다.

또한 보통 승계농들은 자기 생활에 주도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경제적인 면에서 최악의 조건에 놓인다. 품파는 것보다 못하다. 창농처럼 빵빵한 지원을 받지도 못하는데 정작 부모님은 “내가 물려주면 이게 다 네 것인데 무슨 돈을 더 받으려고 하느냐”는 식으로 농지증여, 임대를 해주지 않거나 임금을 주지 않는다거나 적은 돈만 주는 식으로 자녀를 정식적인 직원, 노동자, 경영자로 대우해주지 않는다. 또한 가구원들이 농업에 동시에 종사할 때 자녀들은 독립적인 경영체 등록이 되지 않아 실질적 영농경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길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 한마디만 믿고 이곳에서 이렇게 세월을 보내기에는 농업의 미래가 그렇게 밝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아무런 보장도, 경력도 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영농자녀가 느끼는 불안감과 무기력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승계농들의 다각적인 고충은 농업농촌재생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친다. 귀농귀촌으로 유입되는 신규인구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아무래도 농업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중심을 떠받드는 축은 승계로 이어지는 가족농, 한 터에서 오래 농사지어 전문성과 품질을 유지하고 발전을 주도하며 지역의 농촌네트워크를 재생산할 수 있는 농가다. 농사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1년에 한 번 밖에 해볼 수 없기 때문에 승계를 통해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농가에서 나고 자라며 생활과 감각으로 전승받은 자연에 대한 지혜는 승계농만이 가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농업정책의 맹점 중 하나가 승계농은 이미 기반이 있고 정주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청년농업인 열풍이 부는 동안에도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소외돼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창농 유치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농촌을 지키고 있는 승계농들에 대한 관심과 제도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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