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방역은 실패했다

  • 입력 2019.10.27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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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지역 한돈농민들은 지난 14일 연천군청 앞에 모여 일방적인 수매 및 예방적 살처분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천지역 한돈농민들은 지난 14일 연천군청 앞에 모여 일방적인 수매 및 예방적 살처분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전국적으로는 14번째, 경기 연천군에서는 2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하자 정부는 연천군 내 모든 돼지에 수매 및 살처분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미 인천 강화, 경기 김포와 파주도 모든 양돈장을 비우고 있었다.

이는 어떤 과학적인 근거도 찾을 수 없는, 그리고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치다. 혹자는 과감한 방역을 했기에 백신도 없는 ASF를 경기 북부지역에 묶어두는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방역의 근본목표가 무엇인가? 가축전염병을 차단해 국내 축산업을 보호하는 게 방역의 근본목표다. 즉, 가축전염병의 확산을 막더라도 국내 축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면 그 방역정책은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대 업적으로 가축전염병 방역 성공을 꼽고 있다. 터무니없는 판단이다. 분명 구제역과 고병원성 AI 발생은 줄었다. ASF도 일단 한 달 동안은 경기 북부지역으로 발을 묶었다. 그러나 국내 축산업의 구조는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다.

살처분 조치가 집중된 경기북부 한돈농민들은 지난 2010년 구제역 사태 당시에도 살처분을 경험한 이들이 적잖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재입식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보상책으로는 보탬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료값 상환부터 막막하다.

한돈은 축산에서도 가장 규모화·장치화된 분야다. 축산농가 평균을 따져 나온다는 보상금액으로 피해를 막는다는 것부터 언어도단이다. 축산의 규모화·장치화를 부추긴 건 누군가? 바로 정부다. 문재인정부도 스마트축산을 내세우는데 스마트축산농장이 살처분 조치를 받았다간 당장 망할 것이 뻔하다.

겨울철 오리 사육제한은 올 겨울에도 실시된다.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 동안 전국 오리농장의 약 30%가 사육을 중단한다. 오리는 살아있는 가축이다. 휴지기에 참여한 농장에 3월 1일부터 오리가 입식되진 않는다. 또, 200여곳이나 되는 농장에 한꺼번에 입식했다간 한꺼번에 출하될테니 바람직하지도 않다.

휴지기 참여농장은 사실상 1년 중 절반은 생산을 쉰다. 계열업체 입장에선 공급을 안정시키려면 휴지기에 참여하는 농장보다 참여하지 않는 농장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니 계열업체가 오리 휴지기에 참여한 농장과 계약을 일방적으로 끊는 일도 일어났다. 수급불안은 소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 오리협회 관계자는 “오리고기집이 언제부턴가 삼겹살을 팔더라”고 탄식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ASF 방역상황 점검회의에서 “우리의 대응은 약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해야 한다. 때로는 매뉴얼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그 과정에서 양돈농가는 때로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단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돈농가는 그 매뉴얼에 따라 중국에서 ASF가 터진 뒤 꼬박 1년여를 교육을 받고 농장소독도 충실히 했다. 정부의 정책신뢰도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이 총리는 2017년 고병원성 AI 발생 때도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이 총리는 고병원성 AI 발생이 줄어들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리고기집이 3년동안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는 통계조차 없다. 이 총리가 내린 과감한 지시가 축산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보고받지 않았을 터다. 관료에 포위돼 그들이 제공하는 서류만 읽다보니 착각에 빠질 수 밖에.

전북 익산시 망성면엔 참사랑농장이라는 동물복지 산란계농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 총리가 직접 그 농장을 방문해 살처분 조치가 얼마나 폭력적인 방식인지 살펴보길 바란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직접 닦으면 뭔가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

대한한돈협회는 14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살처분 정책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대한한돈협회는 14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살처분 정책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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