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렁이 없으면 친환경 벼농사 불가능하다

농민들 “왕우렁이 대신 제초제 치라는 거냐”
논 제초 이점으로 관행농가의 친환경 전환도 늘어나
왕우렁이 인한 생태계 교란 피해와 친환경제초 이점 비교해야

  • 입력 2019.10.25 13:50
  • 수정 2019.10.28 08:1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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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왕우렁이 쓰지 말라는 건 다시 제초제 치며 농사지으란 소리냐.”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시의 친환경 벼 재배농민 임삼순씨는 왕우렁이에 대한 환경부의 생태계 교란생물 지정 시도에 위와 같이 답했다. 이는 모든 현장 친환경 쌀농가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왕우렁이는 국내 친환경 쌀농가들로선 제초제를 대체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친환경제초 일꾼이다. 왕우렁이가 생태계로 안 퍼지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농가도 없다. 왜 친환경농민들이 왕우렁이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지, 왕우렁이로 인한 이점과 피해는 무엇인지, 환경부의 생태계 교란종 지정 시도 근거와 그 맹점은 무엇인지 등을 살피고자 한다.

제초제 대체하는 최고의 일꾼

남미가 원산지인 왕우렁이는 1992년 국내 친환경농업계에 도입됐다. 국내 토종 우렁이가 활동이 적고 물속의 녹조류와 이끼를 주로 먹는 반면, 왕우렁이는 활동력과 식욕이 왕성하며 물속에 자라나는 잡초를 먹어치운다. 벼 재배농가들 입장에선 잡초를 대대적으로 제거해주는 셈이다.

오히려 제초제를 뿌리는 것보다 왕우렁이를 이용하는 게 논 제초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2017년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은 제초제 살포 논과 왕우렁이 투입 논(이앙 7일 후 5kg 분량 왕우렁이 투입)의 이앙 35일 후 논 제초 효과를 비교한 결과, 왕우렁이 투입 논이 98.6%, 제초제 살포 논이 91.3%의 제초 효과를 보였다. 왕우렁이 투입 논이 제초제 친 논보다 7% 가량 제초 효과가 높았다.

전남 장흥군의 친환경 벼 재배농민 김재기씨는 “워낙 왕우렁이의 제초 효과가 뛰어나다 보니 장흥군 내 관행 쌀농가 중에서도 약 98%가 왕우렁이를 이용해 제초하는 상황”이라며 “그로 인해 인체와 토양에 해로운 제초제 사용량도 줄어들고, 관행농가 중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하는 농가도 늘어나는 추세”라 밝혔다. 김씨는 “왕우렁이라고 모든 풀을 다 먹는 건 아니고 물속에 자라난 잡초의 새싹 위주로 먹어치운다. 논두렁 풀은 거의 안 건드린다”고 증언했다.

오히려 줄어든 왕우렁이 월동지역

2009년 5월 13일 환경농업단체연합회는 경기도 양평군 일대에서 왕우렁이의 야생 서식 상황에 대한 현지조사 활동을 펼쳤다.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서 진행한 개천 왕우렁이 서식실태 조사 모습.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제공
2009년 5월 13일 환경농업단체연합회는 경기도 양평군 일대에서 왕우렁이의 야생 서식 상황에 대한 현지조사 활동을 펼쳤다.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서 진행한 개천 왕우렁이 서식실태 조사 모습.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제공

그렇다고 왕우렁이에 대한 환경부의 생태계 교란 가능성 문제제기가 아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일본과 대만, 필리핀 등지에선 논 잡초 뿐 아니라 벼 유묘까지 먹어치우기에 벼의 주요 해충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1984년 왕우렁이를 농작물 유해생물로 지정한 바 있다.

다만 이 나라들은 대체로 한국보다 고온다습한 나라들이다. 왕우렁이는 17~25℃의 물에서 잘 자라며, -3℃에서 3일, -6℃에서 1일 내외의 생존기간을 보인다. 따라서 국내의 추운 겨울을 나기가 어렵다. 물론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의 겨울 온도가 상승하는 추세 속에서 월동하는 왕우렁이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당국과 농가들의 적절한 관리가 수반된다면 위에 언급된 나라들처럼 큰 피해가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이상범 박사 등이 올해 한국환경농학회지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왕우렁이 월동지역은 2006년 17개 지역(조사대상 지역 32개)에서 2017년 8개 지역(조사대상 지역 45개)으로 오히려 줄었다. 2017년 농진청 조사 당시 월동 왕우렁이로 인해 전남 강진·고흥·해남지역 25개 논에서 필지별로 0.4%(63㎡)의 피해율이 나타나, 위에 언급된 나라들보단 적은 피해율을 보였다. 다만 미나리 재배지의 경우 그보다 피해율이 높아, 12개 필지에서 4.3%(2,650㎡)의 피해율을 보였다.

따라서 왕우렁이에 대한 정부당국과 연구자, 농가의 관리체계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굳이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해 규제를 가할 필요가 없다는 게 농업계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이미 농진청과 각 지자체에서도 왕우렁이의 생태계 확산 방지를 위한 차단망 설치, 배추잎 등을 이용한 왕우렁이 방제 등의 기술을 개발·보급해 왔다.

왕우렁이를 농작물 유해생물로 지정한 일본의 경우도 지바 현(수도 도쿄 바로 동쪽) 이북에선 왕우렁이 월동 사례가 보고된 바 없다. 지바 현의 1월 평균 최저온도는 1.9℃로, 한국에서 가장 겨울이 따뜻한 축인 부산광역시의 -0.6℃보다도 높은 온도를 보인다. 따라서 일본과 기후조건이 다른 만큼 왕우렁이를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는 건 성급하단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09년 5월 13일 환경농업단체연합회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덕평리에서 진행한 논 토양 내 왕우렁이 서식실태 조사 당시 논 토양 내에서 채집한 왕우렁이 껍질.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제공
2009년 5월 13일 환경농업단체연합회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덕평리에서 진행한 논 토양 내 왕우렁이 서식실태 조사 당시 논 토양 내에서 채집한 왕우렁이 껍질.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제공

‘환경’부, 제초제 규제는 안하나?

한살림연합의 방미숙 논살림 대표는 “관행 논농업에서 친환경 논농업으로의 전환을 쉽게 만들어준 생물농사꾼인 왕우렁이의 가치가 작다고 할 수 없다”며 “왕우렁이를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함에 따른 이익과, 반대로 왕우렁이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지금처럼 친환경농업 일꾼으로 이용함에 따른 이익을 제대로 비교분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왕우렁이 투입 논은 논생물다양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논살림이 지난 19일 경기도 여주 지역의 유기농 논과 관행논에서 물벼룩·또아리물달팽이·실지렁이·소금쟁이 등의 생물분포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관행논에선 3,500㎡, 왕우렁이 투입 유기농 논에선 1만500㎡의 생물분포도를 보였다. 방형구를 통해 조사해 보니 관행논에선 9종의 생물이, 왕우렁이 투입 논에선 18종의 생물이 살고 있었다.

농민들로서는 왕우렁이가 없으면 현실적으로 논의 친환경적 제초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리농법 등의 대안이 없는 건 아니나 기술 보급이 훨씬 어렵고, 오리 보급은 조류독감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화성 농민 임삼순씨는 “정부에서 친환경농사 방식 대안이라도 더 연구해내면 모를까, 지금과 같이 왕우렁이 농법 외엔 대안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교란종으로 지정해버리면 농민들 보고 전부 친환경농사 포기하고 제초제 치라는 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적어도 ‘환경’부라면 왕우렁이와 제초제 중 뭐가 더 생태계에 피해를 입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친환경농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진정성을 갖고 농업생태계에 관심을 갖는다면 합성 살충제나 제초제를 생태계 교란물질로 지정해야 한다”며 “합성농약, 제초제가 조상들이 이뤄놓은 논생태계를 결딴낸 건 외면하면서 왕우렁이만 갖고 늘어지냐”고 성토했다.

광역지자체들 중에도 반발하는 곳이 나오고 있다. 전라남도(도지사 김영록)는 환경부에 낸 의견서에서 “왕우렁이 농법은 2004년부터 벼 제초 목적으로 매년 확대 이용했으나 큰 문제없이 영농에 이용 중”이라며 “잡초제거 효과가 탁월한 왕우렁이 농법을 하지 못할 시 유기합성 제초제 사용에 따른 수질오염, 토양 황폐화 등의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일단 환경부는 “개정안이 아직 확정된 건 아니며, 농식품부 등 관련부처와 농업계 관계자들과도 논의할 계획”이라 밝혔다. 친환경농업계와 농관련 기관, 지자체까지 모두 반발하는 환경부의 왕우렁이 생태계 교란생물 지정 문제. 결론이 어찌 날지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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