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84]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 입력 2019.10.27 18:00
  • 수정 2019.10.29 12:23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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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설악산 단풍이 오색 주전골까지 내려왔다기에 단풍구경을 갔다. 매년 보는 단풍이지만 금년에도 역시 고왔다. 파란 하늘, 기암괴석, 맑은 계곡의 물, 그리고 빨간 단풍나무가 일품이었다. 산천은 이렇게 아름답고 의구한데 그 아랫동네인 농촌은 황량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는 산 허리를 가로질러 볼품없이 허옇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고, 농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온갖 펜션과 호화 전원주택이 골짜기마다 용케도 자리 잡고 있다. 농막 하나 들여놓는 것도 쉽지 않던데 저런 거대한 건축물이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요즘 농촌의 작은 농부들은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들깨 터는 타작소리가 여기저기 울리고 고소한 내음이 온 골짜기를 뒤덮는다. 고추도 건조시키고 김장배추·무 벌레도 잡아준다. 고구마도 캐기 시작했다.

늦가을의 농촌은 스산하다. 더군다나 유아차처럼 생긴 보조기구에 의지해 힘겹게 마을 안길을 거니는 촌로들을 보면 괜히 맘이 짠해진다. 굽은 허리와 굵은 손마디에 서린 저들의 희생과 힘겨움이 없었다면 이 나라가 여기까지 왔을까. 이들은 아무도 알아주려 하지 않지만, 알아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삶이란 이런 것이겠거니 하며 혹독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 온 분들이다. 나는 배운 것도 없고 힘들게 살지만 자식들만큼은 이 지독한 고생을 물려주기 싫어 죽어라 일하며 교육시켜 도시로 내보내고, 이젠 늙고 병든 몸을 겨우 추스르며 황혼을 맞이하는 분들이기에 더욱 가슴 아프다. 어느 누구도 이들이 있어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

그런데도 위정자들이 내놓는 정책마다 현실적이지 않아 답답하다. 농촌이 고령화되고 있으니 청년들을 농촌으로 유입시키자는 청년농 육성 정책도 일견 그럴 듯하다. 그러나 기왕 추진하려면 좀 더 확실한 비전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생활이 가능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스마트팜을 운영하게 하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으나 이 또한 투자비용과 판로확보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 뻔하다. 농산물의 생산·가공·판매가 그리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대부분의 농민들처럼 이들 또한 농외소득에 의존해 이일저일 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 한다면 의미가 없고 좌절만 남게 될 우려가 크다.

근자에는 WTO 체제하에서 개도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기로 한 모양새다. 미국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알아서 기는 당국의 태도에 화가 난다. 수십년간 이 모양이기 때문이다. 왜 당당하게 맞설 생각은 하지 않고 내줄 생각부터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농촌·농민의 몫인데 말이다.

더군다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쪽저쪽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상대를 찌르고 할퀴고 죽이려 한다. 도를 넘고 있다. 견제와 비판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저토록 싸움질하고 있는 걸까. 나라와 백성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서 일까.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서 일까. 진정 우리시대 인걸은 간데없는 걸까.

한 아이를 둘로 나눠 가져가라 했을 때 친모는 그 아이를 죽일 수 없어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처럼,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자는 양보하는 쪽이다. 나라를 망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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