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밀어붙이며 농가 피해만 강요할건가

SOP 넘어선 예방적 살처분 집행에 반발 … “시군단위 살처분은 아집”
경기북부지역 한돈농민 피해 심각 “합리적 보상과 재입식 약속 있어야”

  • 입력 2019.10.20 18:00
  • 수정 2019.10.20 18:44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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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정부의 일방적인 예방적 살처분 범위 확대에 한돈농민들의 원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피해가 집중된 경기북부지역 한돈농민들은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처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9일 경기도 연천군 돼지농장에서 14번째 ASF가 발생하자 연천지역내 잔여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인천 강화군, 경기도 파주시, 김포시에 이어 또 시군단위 살처분 조치를 꺼내든 것이다.

이에 연천지역 한돈농민들은 14일 연천군청 앞에 모여 일방적 살처분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멧돼지 살리려고 집돼지 다 죽이냐”, “근거없는 살처분 즉각 중단하라”고 구호를 외치며 살처분 중단을 호소했다.

이날 집회에 나온 한 한돈농민은 “내 농장은 지난달 19일에 살처분을 집행했다. 언제 다시 입식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면서 “보통 5개월 뒤엔 재입식을 요청하는데 그 사이에 농장에서든 멧돼지에서든 ASF가 발생하면 쉽게 입식허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양주에 모돈농장이 있는데 새끼는 계속 나오는데 보낼 곳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연천지역 한돈농민들은 지난 14일 연천군청 앞에 모여 일방적 살처분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집회를 열었다.
연천지역 한돈농민들은 지난 14일 연천군청 앞에 모여 일방적 살처분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집회를 열었다.

같은날 대한한돈협회(회장 하태식)는 청와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한돈협회는 △무분별한 수매·살처분 정책 중단 △살처분 농가 생존권 보장 △야생멧돼지 포획 및 사살 시행을 요구하며 “농장간 수평전파 사례가 입증되지 않았는데 SOP(표준행동지침)에 정해진 살처분 범위인 발생농장 반경 500m보다 2,800배나 넓은 면적인 연천군 전체를 살처분하는 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북부지역 한돈농민들이 모인 ASF 살처분정책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광진)는 다음날인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군단위 살처분의 부당성을 강변했다. 이어 비대위는 18일 의정부시에 위치한 경기도 북부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일방적 살처분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박광진 비대위원장은 “연천지역 한돈농민들은 3주 넘게 지켜온 삶의 터전인 농장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게 됐다”라며 “해외 전문가들은 감염경로 통제와 발생농장 살처분만으로도 충분히 주변농장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같은 조치를 지속하는 건 정부의 심각한 아집이다”라고 비판했다. 하태식 한돈협회장은 “환경부에 1년 넘게 멧돼지 개체 수 조절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 결과를 가져온 것 아니냐”면서 “정부가 한돈농민들이 생업을 지킬 수 있도록 기본재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ASF 방역에 따른 농가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선 한돈농민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ASF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5일 발생 농장과 예방적 살처분 농장에 보상금을 시세 기준으로 100% 지급하며 살처분 양돈농가에 다시 소득이 생기기 전까지 생계안정을 위해 최장 6개월까지 최대 매월 337만원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이동제한 조치로 피해를 입은 농가는 소득 손실액을 보전하고 농축산경영자금 등 정책자금 상환 연장 등의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돼지고기 경매시세가 ㎏당 3,000원대 초중반으로 폭락한 상황이기에 이같은 보상은 실효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사육기반이 무너진 농장이 다시 돼지를 출하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투입돼야 하기에 합리적인 보상대책과 함께 재입식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

한국농축산연합회(회장 임영호)와 축산관련단체협의회(회장 김홍길)는 17일 국회 앞에서 △SOP 규정 준수 △살처분 농가에 합리적 보상책 마련 및 재입식 약속 선행 △멧돼지 전부 포획 및 사살 시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한돈농민들이)살처분 지침으로 폐업에 준하는 피해를 일방적으로 당하는데도 보상조차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면서 “많은 시설과 투자가 이뤄진 농장이 한순간 사업기반을 모두 잃고 재입식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돼지값만 보상하는 현 보상체제는 미흡하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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