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지원 조례로 본 ‘농민수당’의 미래

국민적 관심과 지지 속 전국서 조례 제정 … 수정·통폐합 홍역, 정치적 볼모 전락도

  • 입력 2019.10.20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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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전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농민수당 주민발의 조례가 지자체별 의회정치의 벽에 가로막히는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국내 사례가 있다. 주민발의 조례의 원조이자 첫 사례인 ‘학교급식 지원 조례’다.

2000년 주민조례 재정·개정·폐지 청구 제도(주민조례청구제도) 시행 이후 학교급식 지원 조례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총 98건이 청구됐다. 아이들에게 지역에서 생산되는 안전한 농산물을 먹이고,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 운동은 시민사회의 전국적 조직 구성과 활동을 통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 확산으로 이어져 전국에서 조례 제정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고 지자체 예산을 쓰며, 위탁이 아닌 직영 운영이 조례의 핵심이다.

2010년 기준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모두에서 조례가 제정됐고, 기초 지자체 189곳(82%)도 조례가 제정됐다. 시민들의 참여 속에 직접민주주의의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조례 제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일례로 안양시의 경우 2004년 주민발의 조례가 만들어졌음에도 WTO 협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명목으로 조례 시행 절차에 돌입하지 않았다. 광역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같은 이유로 대법원에 제소된 까닭이다. 게다가 주민발의 조례를 안양시가 준비한 학교 지원 조례라는 포괄적 안으로 통폐합하며 사실상 폐기를 시도해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안양시는 결국 주민의견을 수렴해 2009년 예산에 10억5,000만원을 편성하며 본격적 시행을 준비했다.

평택에선 주민발의 조례를 수정하며 급식지원 대상에서 유치원을 제외하고, 식재료 규정에서 ‘평택지역’과 ‘국내산’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며 반쪽짜리 조례로 전락한 사례도 있다.

학교급식 지원 조례에 이어 2010년엔 학교무상급식 조례 제정 운동이 거세게 등장했다. 2010년 주민발의 청구 15건 중에 9건이 학교무상급식 조례다.

학교무상급식 조례의 첫발은 2007년 경남 거창군에서 전국 최초로 뗐다. 거창군 농민들과 시민사회는 주민발의로 조례를 제출했지만 거창군의회는 의원안으로 조례를 통과시켰다. 전국 최초 조례 제정에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이후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2009년 친환경 학교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면서 정치적 화두로 부상했다. 2010년엔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학교무상급식 공약 여부가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파급력이 커졌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선별적 무상급식과 초등·중학생 전면 무상급식을 두고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투표율 저조로 자진사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또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지난 2015년 학교무상급식 예산을 끊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학교무상급식을 볼모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물론 시민들의 저항으로 이듬해 재개했다.

학교급식 지원 조례와 학교무상급식 조례 사례를 통해 농민수당이 겪게 될 파고를 가늠할 수 있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전 국민적 관심과 지지의 확산이 뒷받침된다면 농민수당 조례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또한 현재 국회에선 주민조례청구제도를 손보고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의회정치의 벽을 넘어 농민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된 농민수당 조례에 불이 붙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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