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제38회] 역사에서 사라진 원산그룹

  • 입력 2019.10.13 18:0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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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그룹의 지도자 이주하.

1930년대는 해외에서 일어나는 무장투쟁이 독립투쟁의 근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가 마냥 조용했던 건 아니다. 서울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조직과 투쟁에 나섰고 원산과 흥남 등의 공업지대에서도 각성된 노동자들이 강력한 대오를 형성하고 있었다. 30년대에 국내에서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킨 두 개의 조직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김일성 부대의 보천보 습격을 계기로 드러난 혜산사건, 혹은 조국광복회 사건이었고 그리고 다른 하나가 원산그룹 사건이었다.

3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간 것이 있으니, 전향이라는 바람이었다. 지속되던 공산당 재건운동이 사실상 막을 내린 35년부터 이 바람은 불기 시작했다. 일제는 만주를 침략하기 전에 내부의 적을 먼저 일망타진하려 했고 이에 따라 합법, 비합법을 막론한 모든 운동이 설 자리를 잃었다. 탄압을 이겨낼 당도, 조직도 없었기에 일제의 전향제도에 따라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신념을 버리고 투항하였다. 전향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포기가 속출하는 가운데도 자연발생적인 노동자 파업이나 농민들의 소작쟁의는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세계 대공황의 타격을 입은 일제가 식민지 노동자 농민의 착취와 침략전쟁 확대로 활로를 찾으려 하면서 식민지 민중의 삶이 극도로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을 지도해야 할 혁명적 조직은 지극히 미약했고 대부분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원산에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조직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역사에서 금기의 이름이 된 이주하라는 인물의 뛰어난 활동에 있었다. 훗날 남로당 수괴로 체포되어 총살당한 이주하는 일제강점기 전체를 통해 가장 강력한 독립투쟁을 벌인 사회주의자였다. 김일성과의 악연으로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 이름이 지워졌지만 당시 일제 경찰의 기록을 보면 그를 중심으로 한 원산그룹이 얼마나 대단한 조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기록은 이렇다.

1930년대 원산역 풍경.

- 원산그룹사건은 혜산사건과 달리 코민테른·중국공산당·일본공산당 등과 전연 연락 없이 완전히 사상적 전과자에 의한 일군의 적색노동조합 조직운동을 기초로 했으며, 아래로부터 시작된 점에서 현저한 특색이 있다. 테러 행위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수뇌부의 높은 사회주의 의식 수준, 인민전선전술의 정확한 파악, 그 운동 전개의 교묘한 점, 특히 대중 획득을 위한 적극적인 문서 활동의 전개 등은 혜산사건에 비할 바 아니고, 그 대상이 국경 산악지대의 의식수준이 낮은 농민과 원산 같은 수준 높은 노동자와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현저히 운동이 첨예화되고 있는 것으로 이 점 주목된다. 만약에 원산의 이 운동이 1, 2년 더 지속되었더라면 원산철도 2천 수백여 명의 종업원은 물론이고 원산의 노동자 대부분을 조직원으로 포섭하여 어느 때고 무장봉기에 동원할 준비가 완료되었을 것이다 -

일제 경찰의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을 상당 부분 의심하게 한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진보적인 학자들이 보천보 전투와 조국광복회의 독립운동을 30년대 해방운동의 상징이자 최대 사건으로 평가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반공과 반북 이데올로기에 가려졌던 사건이라는 후광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을 열광과 감동에 빠뜨리기도 했다. 김일성이 직접 작성했다는 조국광복회 강령 중 ‘힘 있는 자 힘으로, 돈 있는 자 돈으로, 무기가 있는 자는 무기로’라는 대목은 가장 유력한 해방운동 방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당시 일제가 분명하게 기록해 놓은 원산그룹에 대한 평가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은 명백하게 원산그룹이 혜산사건보다 훨씬 그들에게 위협적이었다고 기록하였다. 일제 치하 여러 조직사건 중에 그들이 실제적인 위협이었다고 평가한 사건은 거의 없었다. 역사란 냉혹한 것인가. 원산그룹은,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운동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계열이 아니라고 해서 외면 받았다. 당시에도 그랬던 것처럼 원산그룹은 지금도 역사의 어둠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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