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가을 문턱에서…

  • 입력 2019.10.13 18:00
  • 기자명 김현희(경북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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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경북 봉화)
김현희(경북 봉화)

가을 햇살은 따갑지만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벌써 차가워져 두꺼운 작업복을 꺼내 입었다. 하루가 다르게 해는 짧아져 꾸물대다보면 해가 금세 넘어가고 그렇잖아도 늦된 산골은 부지깽이도 누워있을 틈 없이 싸돌아다닐 판이다. 가을 곡식들의 갈무리와 고추를 따고 붉게 익어가는 오미자를 수확한다. 잦은 비에 곡식은 더디 익고 겨울은 돌아오니 부지런히 수확하고 갈무리를 한다.

농촌에 살기 전에는 그저 내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무심하게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나서부터는 비가 오고 가뭄이 들고, 바람이 불고, 기온이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는 농민의 삶에서 중요한 관심사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온다. 여름 내내 비 소식을 기다릴 때는 야박하게도 찔끔찔끔 내려서 애를 태우더니 쓸모없는 비가 애를 태운다. 얼마 전 태풍 링링이 한바탕 지나가고 여기저기 피해농가들이 속출했다. 올 초부터 감자, 양파, 고추, 사과까지 가격 폭락과 돼지열병으로 풀이 죽은 농민들의 상처 난 마음에 소금을 뿌리고 가더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젠 또 폭우를 동반한 미탁이 불청객으로 달려들었다.

이젠 체념이다. 다른 건 몰라도 태풍에 대적할 사람은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1년 농사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한 해 농사 헛발질한 것도 허무하지만 마음속 먹구름은 어떻게 걷을 수 있을까.

내가 사는 봉화에는 사과농가들의 재해보험 가입률이 꽤 높은 편이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나 했더니 수확을 앞둔 사과농원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 태풍 피해 농가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보험은 들었지?”란다. “보험 그 까짓게 보상이라도 제대로 된답니까?”라고 대답하면 “보험 들면 더 이익이라는데? 보험사에 잘 말해봐요” 이 말까지 나오면 마음속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온단다.

흔히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하면 모든 게 해결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해마다 내야하는 보험료도 만만치 않고, 보험 가입 대상 작목도 제한적이고 재해보험 대상 작목이 돼 보험에 가입한다고 해도 피해면적 산정과 미보상 규정, 농가 자기부담비율 등을 고려해본다면 현실적으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농작물재해보험제도 도입이 벌써 20년차이고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는 점점 늘어나는데 재해보험 가입률이 전국 31%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증명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는 수많은 소농들은 생활비조차 빚으로 감당하며 고스란히 스스로의 몫으로 감당하고 버틸 수밖에 없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는 많은 소농들은 조금씩 소소하게 무너져 농촌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큰 비와 태풍이 지나간 뒤 물꼬를 돌보고 쓰러진 농작물들을 일으켜 세운다. 벼 한 알, 콩 한 알, 깨 한 알 떠받치는 힘이 세상을 떠받치는 힘이라고, 농업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거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농민들의 삶이 너무 버겁다. 슬픈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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