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발표]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

  • 입력 2019.10.13 18:00
  • 수정 2019.10.13 18:06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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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역 농민들의 힘으로 농민수당 확대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에선 농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을 어떻게 농민수당 입법으로 연결시킬지에 대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농민수당을 단순한 농가소득보전책이 아닌, 농민의 ‘농업의 공익적 기능’ 수행에 대한 정당한 보상책으로 봐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농민수당 자체에 대한 논의와 함께, 그 수당을 받는 사람이자 농민수당 제도를 만들어가는 주체인 ‘농민’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논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복지정책’ 아닌 ‘농업정책’으로서의 농민수당

이석하 전남 농민수당추진위원회 위원
이석하 전남 농민수당추진위원회 위원

농민수당 지급 근거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있다. 지난해 말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농민권리선언에도 각국 정부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농민 기여를 인정하고, 국가별로 이를 위한 정책을 만들 것이 명시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제정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언급함과 함께 이를 담보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노력 필요성을 강조한다.

몇 가지 쟁점을 이야기하겠다. 첫째로 농민수당의 성격에 관해서다. 성격 논의는 명칭을 통해 드러난다. 일각에선 ‘수당’이란 표현이 공짜로, 덤으로 주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며 ‘기본소득’ 또는 ‘소득지원’이란 표현이 적절하다고 한다. 그러나 논의 진행 과정에서 점차 ‘농민수당’으로 용어가 정리되고 있다. 이는 농민수당의 정체성이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과 증진’으로 합의되고 있음을 뜻한다.

둘째, 지급대상의 문제다. 처음엔 지급 대상자가 받아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공정성 문제와 예산 마련 문제에 논의가 집중됐다. 기존에 행정단위는 지급대상을 농업경영체 경영주, 즉 ‘농가’로 한정했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농민이 배제되는 문제가 거론됐다. 현재는 농민수당 지급대상을 ‘농민’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농민’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

셋째, 예산정책의 변화 문제다. 농민수당 실현을 위해선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 전남에서 1년에 120만원씩 34만명의 농민에게 지급하려면 최대 4,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지난해 전남 농업예산 1조3,000억원 기준으로 약 15%를 차지하는 큰 비중의 정책이다. 이런 대규모 예산은 지자체의 예산정책을 전환하지 않는 한 확보가 불가능하다. 농민수당 정책을 통해 기존 규모화 중심 농정을 농민 중심 농정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넷째, 어민수당과의 결합 문제다. 최근 농민수당 운동이 어민수당 관련 논의로 이어지는 건 뜻 깊은 일이다. 그러나 ‘농민도 주니까 어민도 주자’는 식으로, 어민을 곁다리로 추가하는 식으로 추진해선 안 된다. 농민과 어민이 스스로 사회적 위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

전남에선 전농 광전연맹과 민중당 전남농민위원회가 지역 어민단체와 깊이 있게 논의하며 어업·어촌에 맞는 어민수당 기본방안을 확정했다.

농민수당 운동은 직접민주주의 실현의 장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존 정치권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전북도는 “주민청구권에 의한 서명운동 시작 시 지자체는 유사조례를 발의하지 않도록 한다”는 행정안전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조례안을 발의했다. 지역 의회에서도 이미 주민조례안이 올랐음에도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조례안을 발의했다.

국민의 초보적 정치활동에 대한 기본권 제약도 심각했다. 지난달 30일 전남도의회는 “방청권이라도 달라”는 농민들의 요구마저 무시하며 의회 입구를 틀어막고 경찰을 배치한 채 본회의에서 수정 조례안을 발의했다. 결국 농민수당 도입은 지역정치의 민주주의 실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국가 차원에서 농민수당 내용을 입법화해야 한다. 문제는 입법의 취지다. 일각에선 정부가 예산 지원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런 식의 입법화는 결국 구걸식 법률이 되며 농민수당의 본 취지도 왜곡시킨다.

농민수당의 입법화는 범국민적 농업부흥운동의 기틀이자 농정개혁의 엔진으로서 중요한 사항이다. 이를 위해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첫째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정리하고 합의하는 일이다.

둘째, 농민수당이 기본수당, 기본소득제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농업정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농민수당은 소득지원책이나 복지정책이 아닌,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실현하는 농민의 자긍심과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농민 기본권을 강화하는 농업정책이다.

셋째, 농업정책에 대한 기본규정과 제도의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농가경영체 중심, 정부등록 농민 중심 체제를 고집할 시 미등록농민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넷째, 농민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농민수당 운영과 계획을 심의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여기서 농민 참여를 넓힘으로써, 농민이 농민수당 제도 운영의 실질적 주체가 돼야 한다.

‘농민’ 의미부터 제대로 규정하자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농민수당은 농민의 지역정치 참여로 결실을 맺고 있다. 특히 8개 광역지자체에서 주민조례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농민의제가 지역 전체 의제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기존에 농민의 지역정치 개입력이 약했던 경북 봉화·청송군에서도 농민들의 주도로 농민수당 관련 논의가 이뤄지는 게 주목된다. 봉화군에선 올해 봉화사랑상품권을 지급했고, 청송군에서도 지역화폐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추진 중인 공익형 직불제는 말만 ‘공익’ 자가 붙어 있을 뿐이다. 실상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소농직불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농민수당과 정부 직불제를 비교해 보자. 정부 직불제는 여전히 면적을 기준으로 직불금을 지급하는데, 이 기준대로라면 지급 대상 농가는 47.5%에 그친다. 반면 농민수당은 전체 농민을 지급대상으로 삼는다.

지급방식도 다르다. 정부 직불제는 농가에 일정액을 통장으로 지급하는 방식인 반면, 농민수당은 지역화폐를 중심으로 지급하며 향후 제도가 확대돼도 현금과 지역화폐 지급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농민수당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중요 정책 목표로 삼는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 민중당은 전농과의 협의를 거쳐 ‘농업농촌농민의 공익기능 보장을 위한 농민수당법’을 제안했다. 한편 정의당에선 ‘농어업인 기본수당법’을 발의했다. 이 두 법안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겠다.

첫째, 해당 법안들의 목적이다. 민중당 안은 그 목적을 ‘농업 활동이 창출하는 공익적 가치의 보장과 증진’이라 명시하는 반면, 정의당 안은 ‘농어업인에게 기본수당을 직접지불해 안정적 소득기반을 제공’한다고 밝혀 소득보전 성격을 보인다.

둘째, 어민수당 포함 여부다. 민중당은 농민수당을 어민수당과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의당은 ‘농어업수당’이란 이름으로 두 가지 수당을 묶었다.

셋째, 농민의 책무 측면에서 봤을 때 정의당 안에는 ‘기본수당을 받는 농어업인에겐 산불 예방, 농지 형상유지, 검역 준수, 단위면적당 적정사육두수 준수 등의 책무가 부과된다’는 내용이 있다. 민중당 안은 ‘농민은 마을교육, 마을공동체 활동 참여와 농생태계 보전 등을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한다.

넷째, 지급시기와 방법의 경우 민중당 안은 농민수당을 매달 20만원씩 수령인 명의로 개설된 계좌에 정기적으로 지급하며, 시·군·구 별로 현금과 지역화폐의 비율을 정하도록 한다. 정의당 안은 기본수당을 매월 10만원 이상 정기적으로 기본수당 입금 전용 계좌에 지급하며, 관할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다른 방법으로도 지급하도록 정한다.

또한 민중당 안은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재정지원 관련 법률이 제정 또는 개정될 시 이 법을 이유로 제한돼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는 이중지원 논란을 잠재우려는 것으로, 다른 지원사업으로 인해 농민수당 제도가 제한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향후 농민수당 입법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대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가 통일시대 식량주권과 민족자주 실현의 물적 토대이자, 지역소멸 위기 극복의 방안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농업예산의 확대와 효율적 운영도 요구된다. 그간 면적과 소득 중심 농정 하에서 스마트팜 혁신밸리 등의 시설투자사업, 무리한 농기계 보조사업 등 낭비적 사업이 많았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주한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미국 무기 구매 예산 등의 군비도 줄여야 한다. 이 예산을 바로잡아 농민과 노동자, 빈민 생존권을 위한 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농민’의 의미를 제대로 규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현재 농식품부 고시는 연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한 걸로 농업인 확인서에 기록된 사람을 ‘농업인’으로 규정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 증빙서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농지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농업인이 될 수 있는 반면, 정작 오랫동안 농촌에서 농민으로 살아온 은퇴농, 고령농은 정보 접근이 어려워 농업인 확인서를 작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헌법이 규정한 대로 ‘농민’이란 용어로 법률 조문을 통일함과 함께, 농민에 대한 규정 재정립을 위한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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