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올해도 ‘을’의 탄식은 계속됐는데

  • 입력 2019.10.13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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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삭풍이 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올 한해 가금분야 취재를 돌아보면 ‘을’로서 억울함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던 육계·오리농민들이 먼저 떠오른다.

지난 봄, 갓 입식한 자신의 육계농장이 질병진단 감정에서 가축전염병 진단을 받았다는 제보를 들었다. 가금류 질병은 고병원성 AI만 있는 게 아니다. 가금티푸스, IB, 아데노 바이러스, 닭뉴모바이러스 등 많은 질병이 가금농장을 위협하고 있다.

더 기막한 사정은 그 다음이다. 이 농민은 계약한 계열업체에 매몰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단 키워서 출하하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출하할 때까지 입식했던 사육수수의 25% 가량을 잃고 말았다. 사육비 정산은 적자로 나왔다.

법정가축전염병에 해당하지 않는 질병들은 사실상 가금농민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실정이다. 전염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역학조사가 없으니 밝힐 수가 없다. 원인을 모르면 농장에 책임이 전가되기 십상이다. 그나마 잘 풀리려면 계열업체의 ‘선처’를 바랄 뿐이다.

한 오리계열업체는 사육비를 대폭 삭감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겨울철 오리 사육제한으로 한 때 사육비가 급등했지만 적잖은 오리농장들은 사육제한에 걸려 그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사육제한에 해당된 오리농민들은 생계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어느 농민은 30년 가까이 계약해온 계열업체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계열화사업 참여현황은 육계는 92.1%, 오리는 97.6%에 달한다. 축산계열화사업에 관한 법률(축산계열화법)은 계열업체와 사육농가 간 불공정행위를 표준계약서, 계열화사업분쟁조정위원회 등을 통해 억제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그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2019년은 이같은 상황을 해결할 단초가 제시된 해이다. 축산계열화법이 지난해 12월 개정됐으며 현재 관련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 또, 농식품부는 올해부터 2차 축산계열화사업 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계열업체가 ‘갑’의 지위를 이용해 약자인 다수 농가를 보호하는 제도적 관리체계에 한계를 노출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계획인만큼 공정성 확보야말로 5개년 계획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한 가금단체 관계자는 “축산계열화법 취지는 축산업 발전에 있다. 정부에서 처벌보다 분쟁의 소지가 있는 사안들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면 한다”면서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물론 당장은 뿌리가 깊은 불공정관행을 바로잡기는 쉽지 않을 터다. 농식품부에서 애써 만든 여러 조치들이 뜬구름처럼 현장을 겉돌다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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