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태풍 세 개 … 겨울채소 수급 비상

농작물 유실·침수피해 눈덩이
보이지 않는 잠정피해도 상당
채소는 물론 쌀 생산도 휘청

  • 입력 2019.10.1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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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8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배추밭. 밤새 비가 내려 땅이 젖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배추들도 맥없이 땅에 붙어 널부러져 있다. 해남엔 이처럼 전파된 배추밭이 전체의 20~30%에 달한다.
지난 8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배추밭. 밤새 비가 내려 땅이 젖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배추들도 맥없이 땅에 붙어 널부러져 있다. 해남엔 이처럼 전파된 배추밭이 전체의 20~30%에 달한다.

한 달 사이 세 개의 대형 태풍이 몰아치면서 농작물 작황이 크게 무너졌다. 특히 파종 직후부터 쉴 새 없이 재해에 시달린 월동채소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 겨울철 채소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가을 재해는 이례적인 수준이다. 8월 말부터 현재까지 남부지역에 가을장마가 이어져 농작물 생육이 크게 저해됐고, 그 와중에 지난달 6일 ‘링링’, 21일 ‘타파’, 지난 2일 ‘미탁’ 등 태풍이 연달아 쓸고 지나가면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잎은 햇빛을 보지 못해 생장하지 못했고 뿌리는 물에 잠겨 뻗지 못했으며 줄기는 바람에 꼬이고 쓸려 두 번 세 번씩 꺾여버렸다.

채소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제주다. 제주 농민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밭작물의 절반이 없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도청이 잠정집계한 농작물 태풍피해 규모는 유실·침수피해만 따져도 ‘링링’이 4,809ha, ‘타파’가 6,211ha다. 행정 측의 잠정적 집계인데다 뒤이은 ‘미탁’ 피해와 장마·우박 피해 등을 감안하면 실제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제주 전체 농지(약 6만ha)에 대입했을 때 농민들의 체감이 아주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주는 월동무·당근·양배추·감자 등 우리나라의 겨울철 채소 생산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지역이다. 때문에 12월 이후 채소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우려된다. 다만 무의 경우는 다른 작목과 사정이 조금 다른데, 태풍 ‘미탁’ 이후 재파 가능한 품목이 시기상 무밖에 남아있지 않아 오히려 재배 쏠림으로 인한 과잉을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제주도는 14개 품목에 휴경보상까지 실시하며 피해농가들의 월동무 재파를 자제시키고 있다.

육지의 피해도 막심하다. 생육 극초반에 피해를 입은 마늘의 경우 단가가 비싼 탓에 재파할 종자 확보 자체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당장 급한 작목은 배추다. 김장배추와 겨울배추의 최대 산지인 전남 해남이 제주에 못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얼핏 보기엔 제주보다 상황이 조금 나아 보이지만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추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김애수 해남 산이농협 조합장은 “현재 전파된 밭이 20~30%정도 되고 남아있는 밭들도 들여다보면 색이 노랗다. 출하를 한다고 해도 포기당 3kg은 돼야 배추라 할 수 있는데 2kg짜리 나오기가 힘들 것 같다. 그걸 감안하면 50% 이상이 피해를 본 셈”이라고 설명했다.

비단 채소만이 큰일은 아니다. 전남지역 거의 모든 논이 도복돼 있을 정도로 벼 피해도 심각하다. 채소에 비해 회복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수발아와 흑수·백수 현상이 속출하는 등 배추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피해가 더 크다. 김영동 전국쌀생산자협회장은 “정부가 쌀 피해규모를 10만톤 정도로 본다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산지 상황을 보면 100만톤까지도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급도 수급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농민들의 생계에 있다. 잇단 장마와 태풍을 맞아 이중 삼중 비용을 투입하고도 결국 농사를 포기한 경우가 허다하다. 전례없이 중첩된 재해가 농산물 수급을 넘어 농민들로부터 농사를 지속할 동력 자체를 앗아가고 있다(관련기사 하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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