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기본권,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2차 토론회]

  • 입력 2019.10.13 18:0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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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지난해 12월 유엔 제55차 본회의에서 ‘유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됐다. 세계적 농민단체 비아캄페시나(비아)는 각국 농민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농민권리선언 확산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아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선언채택에 적극 힘을 모았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 내에서 ‘농민권리’라는 화두가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월 농민권리에 대한 국내 실천을 목표로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대표 윤병선 건국대 교수)’이 발족했고, 발족식과 함께 연 1차 토론회에 이어 지난 7일 2차 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기본권으로서의 농민권리, 실행과 연대를 위한 방안’이다.
지난 6월 발족한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대표 윤병선 건국대 교수)’이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본권으로서의 농민권리, 실행과 연대를 위한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6월 발족한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대표 윤병선 건국대 교수)’이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본권으로서의 농민권리, 실행과 연대를 위한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기본권으로서의 농민권리, 한국사회에서의 의미’라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로 시작됐다.

헌법에 농업조항 신설, 국가 책무 명시해야

한상희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 교수는 농민권리선언이 실천되는 매개로 ‘헌법’을 주목했다. 문재인정부 개헌 논의 과정에서 농민헌법에도 깊이 관여했던 한 교수는 “최근의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의 다기능성에 대한 인식, 식량안보 혹은 식량주권의 이념에 대해 헌법적 관심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농민은 정치·경제적 주체는커녕 동원의 대상이나 교화, 수탈의 대상으로만 몰려왔다. 농업과 식량문제 역시 상품이자 경제 하위개념으로만 머물렀다”고 농업·농민의 현실을 비판했다.

한 교수는 이런 질곡의 해결책으로 농업부분의 헌법화 방안을 강조하면서 “농업문제의 헌법화라는 당대적 과제는 급박한 농업·농촌·농민 현실 인식에서부터 직관된다. 헌법에 농업조항을 신설해 국가농정의 목표와 과제를 명확히 하는 한편 농민과 농산물·식량에 대한 국가적 책무에 대한 지향점을 구체적으로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민권리선언은 법규범으로서 실효성을 갖지 않는 ‘선언’이라는 한계가 있고, 국내법으로 편입되기도 쉽지 않다. 우리 헌법은 추상성의 형식이기에 농민권리선언을 구체적으로 대응시키는 것도 한계가 크다. 이에 한 교수는 “헌법의 해석투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농민권리선언이 규정하고 있는 제반의 농민권리들 또는 국가의 보호·촉진의무들이 헌법조항들의 해석준칙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도록 정치적, 사회적 압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럽권리협약과 그 해석·집행의 준칙들이 우리 헌법재판소와 법원을 압박하는 준거로 작용한 방식에서 힌트를 얻자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헌법개정에 농민헌법을 적극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 교수는 “농업문제의 헌법화를 위해 헌법전문이나 총강을 개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사회정의·연대·성평등이라는 세 가지 기본지침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본권 조항에 있어서 식량권과 식량주권을 보편적 보장이 가능토록 하고, 현행 헌법 121조 소작금지규정의 경우 경자유전 원칙은 그대로 두되 농지를 농촌공동체의 현재 상태를 해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용에 제한을 두자는 것이다.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농민과 농촌의 생활상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우리는 농민권리 문제를 사회의제로 끌어올리면서 헌법에 투영시키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그에 앞서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인 한국이 왜 농민권리선언 채택에 기권을 했는지, 국가인권위라도 정부에 명확한 입장을 들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농민과의 ‘농민권리 실천방안’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농민의 시선에서 본 선언의 방향과 구체적 실천 모색’에 대해 의견을 전했다. 송 부소장은 “전체 농업·먹거리 운동 진영이 농민권리 그리고 농민권리선언 안에 담긴 농업의 방향성에 기반한 큰 틀의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통합적인 대안운동의 방향성 조율을 주문했다.

이어 “중앙정부 차원의 농정대응과 개선 뿐 아니라 지방정부 수준에서 농민권리선언의 이행과 실천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송 부소장은 “우선 농업정책 전체의 틀과 방향을 농민권리를 바탕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국제적 동향에 비춰 우리의 토지권, 농지권, 농민의 적정 소득, 이주 농업노동문제 등이 손질돼야 한다. 또 기존 농정평가를 농민권리선언을 기준으로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다”는 말과 함께 “단작과 주산지 중심의 농업정책을 ‘먹거리 체계’의 지속가능과 ‘생태적’ 지속가능 측면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에서 먼저 시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고 강조했다.

백혜숙 (사)농어업정책포럼 먹거리유통분과 위원장은 소비자와 함께하는 농민권리선언 실천문제를 현실 가능한 방향으로 제시해 주목도를 높였다.

백혜숙 (사)농어업정책포럼 먹거리유통분과 위원장
백혜숙 (사)농어업정책포럼 먹거리유통분과 위원장

백 위원장은 “농민권리가 보장되면 소비자의 먹거리 인권도 보장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가 필요하다. 생산자와 먹거리 소비자가 연대해야 하고 사람과 물자, 정보의 순환과 균형을 이루는 지역상생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농민권리선언문과 구체적으로 연대할 방안에 대해 “종자권과 생물다양성 보전의 권리는 서울시 지역상생종합계획 추진과제 중 하나인 ‘도농상생 종자네트워크’를 만들고 연대하는 방안이 있다. 먹거리권리와 식량주권, 생산수단과 시장접근권, 가격결정권의 문제는 서울시 지역상생종합계획 추진과제 ‘지역상생푸드’로 연대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아울러 백 위원장은 “농민의 중요한 권리인 토지, 자연자원 보존·보호 문제는 서울시 과제 공익캠페인과 연결할 수 있다. 농민과 소비자 모두 적정한 농산물 가격을 원한다는 측면에서 ‘공영도매시장’을 통한 연대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먹거리 소비자·생산자·유통인이 연대해 국제 기준에 맞게 농민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하는 것부터 실행해야 한다. 농민권리선언 이행지표를 보급해 발전시키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이 나서야 하고, 무엇보다 포럼사무국이 구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윤정 강원도 홍천 청년농민
현윤정 강원도 홍천 청년농민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농촌으로 향한 청년여성농민은 농촌현실과 농민권리는 얼마나 괴리가 심한지에 대해 생생한 경험담을 발표해 큰 박수를 받았다. 강원도 홍천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청년여성농민 현윤정씨는 “3년 전부터 전문기관에서 농업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고 이웃들의 조언 속에 농사를 시작했다. 450평에 무농약으로 옥수수 3,000주를 심었더니 25접(옥수수 2,500개) 정도의 상품을 수확할 수 있었다. 접 당 5만원, 125만원 매출을 냈다. 첫해 뿌린 퇴비와 로터리 비용, 비닐값과 종자값을 제하고 나니 인건비와 식대비 명목으로 65만원이 남았다”고 농산물값과 농가소득 얘기부터 꺼냈다. 농지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고, 생산뿐 아니라 가공·유통까지 다 뛰어들어도 1년 수입이 직장에 다니던 월급 수준에 못 미친다고 토로했다.

현씨는 “노동자들에게 당연한 권리인 4대 보험이 농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도시에서 필수인 성평등 교육 역시 농촌에서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마을 할머니들은 행사 때마다 ‘부녀회’로서 음식과 설거지 책임을 진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그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일도 농촌에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고 조목조목 실태를 전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청년의 시선에서 본 농촌의 모습에 더욱 농민권리선언의 실천 과제가 막중하다는 것을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윤병선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건국대 교수)
윤병선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건국대 교수)

포럼 대표이자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유엔에서 농민권리선언을 채택한 이유는 농민과 농촌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농민권리선언이 한국 사회 내에서 일으키는 반향은 크지 않다. 농정패러다임 전환이 이야기 되고 있지만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란도 있고 진행상황 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6월 뜻을 모아 포럼을 발족하면서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포럼을 통해 농민권리가 우리 사회에 확산될 수 있도록 더 고민하겠다”고 토론회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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