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영도다리③ 태종대에 해안포기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 입력 2019.10.06 19:2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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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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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대일본제국이 중국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조선반도의 해안에 그 전진기지가 필요한데, 군사 요새를 만들기에 이 곳 영도만한 적지가 따로 없습니다.

-영도에 군사기지를 조성한다? 흐음, 어디 그 구체적인 계획을 한 번 설명해 보게.

-자, 이 괘도에 보이는 그림이 영도의 지형을 확대한 것입니다. 여기 이 곳, 봉래와 영선동 일대에는 우리 천황폐하 군대의 군마 주둔지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또한 여기 보이는 이 쪽 태종산에는 육군 휴게소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제부터가 아주 중요한데요, 저 쪽 해안 절벽 위에는 야간에 해상을 감시하는 서치라이트 부대를 배치합니다. 그리고 여기가 태종대인데요, 태종대 바로 옆 이 부근에다 적군의 함대를 공격할 수 있는 함포기지를 조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포기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영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교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량이라니? 그럼 바다 위로 다리를 놓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함포기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대형 군수장비를 운반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태종대는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대형 선박이 접안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앞에서 소개한 대화체의 글이, 실제로 일제가 부산의 영도를 군사기지화 하려는 목적으로 열었던 내부 비밀회의의 회의록을 발췌한 내용이냐고? 그건 아니다. 향토 사학자이자 영도 토박이인 부성수 할아버지가 내게 보여준 이런저런 자료와 그 자신의 증언을 토대로, 내가 대충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후에 그런저런 군사시설이 들어섰고 보면, 영도다리의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와 비슷한 회의를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영도에 실제로 군마장이 조성됐고, 구청 위쪽에는 고사포부대도 들어왔어요. 구청 뒤편에 서치라이트부대도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이런 시설들이야 다리를 놓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만들 수가 있어요. 문제는 태종대에다 해안포기지를 설치한다는 구상인데, 거기 필요한 육중한 설비들을 배로 실어 나른다? 태종대 그쪽은 선박을 접안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사람이 그걸 지게에 짊어지고 암벽을 기어오를 수 있나요? 다리를 놔서 운반해야 가능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일제가 영도다리를 가설했던 것은 식민지 백성들의 생활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도라는 섬에 군사기지를 들어앉히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가 준공 되고 나서 2년이 지난 1936년의 어느 여름날, 한밤중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일본관리가 확성기를 통해 명령어투로 엄포를 놓았다.

-영도 주민들에게 알린다! 이 방송을 듣는 즉시 집안에 있는 모든 등을 소등하라! 다시 한 번 알린다! 영도 주민들에게 등화관제 명령을 발령한다! 집안에 있는 일체의 불빛이 밖으로 새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일 호롱불빛 하나라도 새나오는 집이 있으면….

주민들은 일본 관리의 명령에 따라 불을 끄고서,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불안한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부성수 소년도 이불 속에 들어서 고개만 내민 채 두려움에 떨었다는데.

“바로 얼마 뒤에 창문 밖 도로에서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 굉음이 아마 새벽까지 계속됐을 거예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일제가 주민들의 눈을 가린 채로 대형트럭 등을 동원해서, 태종대에 해안포기지를 설치하는 데에 필요한 장비의 운반을, 군사작전 하듯이 그 밤에 해치운 것이다.

그런데 일제가 영도에 군사기지를 구축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인물이 있었다. 영도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일본 사람 ‘하사마(迫間房太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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