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공화국’ 49년 철옹성이 무너진다

  • 입력 2019.10.06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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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쏟아진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에서 열린 ‘청정봉화를 위한 실천의 날 영풍빼야 청정봉화!’에 참석한 시민들이 수십 년 간 영남지역 자연환경을 오염시켜 온 영풍 석포제련소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앞세우고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쏟아진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에서 열린 ‘청정봉화를 위한 실천의 날 영풍빼야 청정봉화!’에 참석한 시민들이 수십 년 간 영남지역 자연환경을 오염시켜 온 영풍 석포제련소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앞세우고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영남지역 인구 1,300만 명의 식수를 제공하고 있다는 낙동강. 놀랍게도 이 젖줄의 최상류 인근 깊은 산속에는 대기와 하천으로 중금속을 끊임없이 뿜어대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은, 석포제련소가 가동된 지 5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올해가 돼서야 주요 방송사들의 심층취재를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KBS 추적60분’과 ‘MBC PD수첩’은 석포제련소에서 벌어진 영풍의 불법행위를 집중 조명했다. 추적60분은 석포제련소가 납득이 가지 않는 행위를 벌이고도 여전히 조업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관료 출신으로 사외이사에 선임된 ‘환피아’들의 공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석포제련소 하청업체에 위장취업까지 시도했던 PD수첩 제작진은 시설 내부의 열악한 환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임원진들의 거짓증언도 기록으로 남겼다.

석포제련소의 이 같은 불법행위가 뒤늦게나마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던 배경엔 ‘청정봉화’, 그리고 낙동강이 오염돼 가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봉화군민과 농민들, 이들을 돕는 시민·환경운동가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첫 조업정지 행정처분의 원인이 됐던 2018년 2월의 폐수 70톤 유출 사태는 석포면의 철옹성이 무너지기 시작한 기점이 됐다. 석포제련소 측이 사고를 감추려고 굴착기까지 동원한 것을 목격한 한 군민이 행정기관에 신고하면서 들통난 사건이다.

봉화군농민회,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조직들과 더불어 부산·창원 등 낙동강 하류 지역의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봉화군과 경상북도, 대구지방환경청, 환경부 등 석포제련소의 관리·감독에 책임이 있는 지자체와 관계부처를 끊임없이 압박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영풍그룹 산하 회사들 중 대중과 가장 친밀한 ‘영풍문고’의 대구와 종로 매장 앞에서 장기간 1인 시위를 펼치며 국민들에게 봉화군과 낙동강의 상황을 알리려 애썼다.

이들의 부단한 노력은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1차 조업정지 행정처분 이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인터넷 뉴스가판대에는 기사가 쏟아졌다. 지금껏 꿈쩍도 않던 환경부는 올해 4월 폐수배출점검에 나서 문제를 직접 인지했고, 행정처분을 요청받은 경상북도는 석포제련소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120일 조업정지를 예고하고 있다.

기준치의 3만 배가 넘는 카드뮴이 검출되는 등 검사를 통해 드러난 오염은 그야말로 ‘과연 이런 일이 21세기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었고, 대단위 탐사보도를 이끌어냈다.

두 번의 조업정지 행정처분이 적법한 것으로 확정된다는 가정 하에, 첫 행정처분으로부터 2년이 되는 내년 4월 이전에 물환경보전법 위반으로 다시 적발될 경우 석포제련소는 폐업을 면치 못하게 된다. 석포제련소가 오염물질의 배출을 통제하며 조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영풍빼야 청정봉화’를 외치는 이들은 마지막 한 장의 ‘옐로우카드’를 꺼내기 위해 석포제련소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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