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공화국’에 맞서는 사람들

공동대책위, 봉화·안동 넘어 부산 등 영남권 전체로 참여 확대
민변 변호사들도 합류 … “영남도민들은 이미 많은 기회 줬다”

  • 입력 2019.10.06 18:00
  • 수정 2019.10.06 19:4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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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2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에서 열린 ‘청정봉화를 위한 실천의 날 영풍빼야 청정봉화!’에 참석한 시민들이 ‘영풍제련소 OUT’, ‘토양정화명령 이행하고 조업정지처분 수용하라’ 등이 적힌 선전물을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에서 열린 ‘청정봉화를 위한 실천의 날 영풍빼야 청정봉화!’에 참석한 시민들이 ‘영풍제련소 OUT’, ‘토양정화명령 이행하고 조업정지처분 수용하라’ 등이 적힌 선전물을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일, 대한민국은 태풍 ‘미탁’의 영향권 안에 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서도 ‘청정봉화를 위한 실천의 날’은 예정대로 강행됐다. 봉화군과 낙동강의 환경을 걱정하는 영남 각지의 사람들이 봉화로 모여들어 ‘영풍빼야 청정봉화’를 외치고 세찬 비를 맞으면서도 끝내 봉화 시가지를 행진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영풍제련소봉화군대책위원회(영풍대책위),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피해 공동 대책위원회(공대위), 봉화군농민회는 오래 전부터 이날의 집단행동을 준비해왔다. 석포제련소에 대해 120일 조업정지 행정처분이 예고되고, 임원이 구속되는 등 반세기 가량 굳건했던 철옹성이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석포제련소의 폐쇄만이 봉화군과 낙동강을 살리는 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제련소를 보냅시다. 과감하게 보내고 난 뒤엔 청정봉화가 우뚝 설 것입니다. 석포가 청정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다면 그 자체로 석포의 새로운 관광동력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지금도 이 봉화 땅 어디에서 석포면민 몇몇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함께 논의하며 청정봉화를 건설하고 석포를 청정봉화의 상징으로 만들어갈 것을 제안합니다(이상식 영풍대책위 위원장).”

석포면 인구 2,200명 중 대다수는 생계를 석포제련소에 직·간접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석포면이 ‘영풍공화국’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조차 중금속 오염으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고 있음이 드러났는데도 생존권 사수를 이유로 석포제련소를 감싸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석포제련소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민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 석포면에는 ‘청정봉화’를 강조하며 동해안~신가평간 고압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역 이기주의가 빚은 전형적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다수의 석포면 주민들은 ‘환경단체가 거짓선동을 하고 있다’며 석포제련소의 편에서 맞서고 있으나, 이미 석포제련소의 환경파괴 행위가 공식적으로 입증돼 설득력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달 17일 조업정지 행정처분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경북도청 앞에서 대립이 벌어진데 이어 이날도 주민들과 제련소 근무자 등 500여명은 공대위 등의 대회 장소와 불과 500여미터 거리 신시장에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일부는 대회를 방해하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들의 집회에서는 ‘생존권’만을 강조하며 과격한 발언이 이어지던 가운데 심지어 ‘저런 사람들은 전두환 정권 때처럼 삼청교육대를 보내버려야 한다’는 믿기 힘든 수준의 비난까지도 등장했다.

“… 그렇게 된다면 이 낙동강 상·하류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봉화군민들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라 판단하며. 저 남녘에 계시는 분들, 우리들이 제련소를 몰아내고 청정봉화의 길로 나선다면 봉화사람들과 함께 청정봉화를 건설하고 낙동강 재자연화를 위해 함께 나아가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석포제련소는 이제 봉화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남권 전체의 관심사가 됐다. 봉화군의원으로 활동했었던 이상식 영풍대책위 위원장은 이것이 봉화군만의 문제가 아닌 낙동강을 식수로 쓰는 영남권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해왔다. 현재 공대위에는 봉화와 인접한 안동뿐만 아니라 가장 하류에 위치한 부산과 창원 등지에서도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누가 우리 낙동강 시민들을 태풍이 몰아치는데도 이 자리에 오게 만들었습니까. 낙동강 최대 범죄기업 석포제련소를 폐쇄해야 합니다. 낙동강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시는 범죄기업이 자리하지 못하도록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의장).”

지난해 석포제련소의 불법행위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영남지역 법조인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이날 집회에 나온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지부 백수범 변호사는 영풍이 행정처분에 불복해 항소하고 청문회를 신청하는 등 시간을 끌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장기간의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주민들을 도울 것이라 밝혔다.

“변호사들이 나서는 이유는 (영풍이) 해도 해도 너무해섭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 무엇으로 이뤄져있습니까. 땅, 물, 공기인데 그 모든 것을 중금속으로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50년 간 1,300만 영남도민들이 기회를, 이미 너무 많은 기회를 줬습니다. 이제는 봉화군민들 뿐만 아니라 도민들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환경오염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오염시킨 환경을 정화하고, 제련소를 폐쇄하는 것까지 법률대응단이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8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영풍 석포제련소 공대위와 함께하는 법률대응단’은 봉화군, 경상북도, 형사고발, 민사소송 등으로 담당을 나눠 주민들을 돕고 있다. 법률대응단 측은 또 환경부와 접촉하며 석포면 인근을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보전대책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지정이 되면 석포제련소 제재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주민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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