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태풍 앞에서

  • 입력 2019.10.06 18:00
  • 기자명 전용중(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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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중(경기 여주)
전용중(경기 여주)

팔십이 넘으신 어머니와 일을 하다보면 가끔씩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속담을 듣게 됩니다.

추수를 앞둔 이맘때면 “도토리가 풍년이면 농사가 흉년이라는데…” 하십니다. 내 생각에는 도토리가 잘 열리면 나락도 잘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을걷이를 앞두고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태풍 걱정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망가진 가을농사로 허기진 농부의 눈에는 유난히 도토리가 더 잘 보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두 번의 가을 태풍이 지나고 다시 태풍이 오고 있습니다. 반쯤 지나고 있는 가을걷이는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앞선 태풍에 넘어진 조생종 벼를 간신히 베고 나니 두 번째 태풍은 중생종을 넘겨 버렸습니다. 만생종 수확을 앞두고 세 번째 태풍 ‘미탁’이 다시 올라오고 있습니다.

더 쓰러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베어 보려고 서두르는 만큼 기계는 더 자주 망가집니다.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소출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남의 농사 짓는 소작쟁이는 한 톨 한 톨이 피요 살인데….

이렇게 농사를 지어서 임대료 주고, 농협에 비료값, 농약값 주고, 주유소에 기름값 주고나면 대학 간 놈 등록금은 남을는지….

그 와중에 서울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소득대책 없는 변동직불금 폐지’, ‘개도국 지위 포기’ 소식은 다시 밀려오는 태풍보다 더 절망적입니다.

태풍에, 살농 정책에 빈털터리 소작쟁이들은 도토리를 찾아 다시 여의도 아스팔트로 나가야겠지요.

작년부터 갈고 뿌려놓은 ‘농민수당’, ‘경자유전’, ‘통일농업’ 수확하러 여의도로 가야지요. 하늘이 보낸 태풍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정치꾼들, 장사꾼들이 망쳐놓은 한국 농업은 우리들의 ‘아스팔트 농사’로 갈아엎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태풍 보내고, 가을걷이 끝내고 서울에서 만납시다.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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