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실험’ 통한 대안농업

  • 입력 2019.10.06 18:00
  • 수정 2020.01.07 10:5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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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인도의 생태농업운동가 반다나 시바 씨는 “오늘날 매년 240억톤의 비옥한 토양이 세계 농업시스템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일갈한 바 있다. 화학비료 중심 단일경작으로 인해 농토를 가뭄에 취약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론 기후마저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토양 살리기’의 중요성

따라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농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 ‘친환경농업 확대’임은 분명하다. 특히 현 시점에선 토양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 반다나 시바 씨는 “토양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유기체들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원천인데, 그 유기체를 구성하는 건 바로 미생물”이라 지적했다. 토양 미생물들은 토양 구조를 유지함으로서 토양 침식을 방지하며, 죽은 동식물의 분해와 질소 고정에 기여한다.

충남 부여군의 한 농지에서 부여군여성농민회의 한 농민이 들깨밭에 물을 주고 있다. 이 농지는 부여여농이 농생태학적 농업 실현을 위해 마련한 농지로, 들깨밭 옆엔 토종파의 일종인 삼층거리파(우측 하단)를 심었다. 이같은 다양한 생태농업 실험이 가능한 제도적 여건이 절실하다.
충남 부여군의 한 농지에서 부여군여성농민회의 한 농민이 들깨밭에 물을 주고 있다. 이 농지는 부여여농이 농생태학적 농업 실현을 위해 마련한 농지로, 들깨밭 옆엔 토종파의 일종인 삼층거리파(우측 하단)를 심었다. 이같은 다양한 생태농업 실험이 가능한 제도적 여건이 절실하다.

문제는 ‘기술 보급’

국내 친환경농업은 침체 상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 농경연)의 8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친환경 인증면적은 전년 대비 1.9% 감소한 7만8,500ha였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유기농지는 늘어나는 추세다. 농경연은 2017년 전 세계 유기농지 면적이 1999년 대비 6배,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농경연은 국내 친환경농업 침체 요인에 대한 농가조사 결과, 약 39.9%의 농민들이 ‘친환경 생산기술 확보의 어려움’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고 밝혔다. 농관련 기관도 친환경농업 관련 기술 개발에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문제는 ‘보급’이다. 기후위기와 농생태학 관련 연구를 지속하며 농진청의 연구를 봐 왔던 김석기 토종씨드림 운영위원은 “농진청의 연구 성과가 현장으로 잘 안 퍼지더라”라며 그 요인 중 하나로 경제성 문제를 꼽았다. 농민들로선 친환경농업을 추진하려면 기존과 다른 농업방식을 택해야 하고, 원래 하지 않던 작업도 해야 한다. 이는 농민의 의무감만으론 불가능하다는 게 김 운영위원의 입장이다.

연구자이자 실험자인 농민

따라서 농민이 ‘주체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주체성’이란 농민들이 다양하면서도 독창적인, 또한 대안적인 농사방식을 마음껏 추구하는 걸 뜻한다.

‘농민 주체성 발현’ 측면에서 쿠바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쿠바 유기농업은 20세기 말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와 미국의 경제제재 강화 속에서 식량위기 타개 수단으로 시작됐지만, 지금처럼 확대된 데는 농민들이 마음껏 유기농업을 실험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짰던 것도 한몫 했다.

쿠바 정부 연구기관인 전국농업과학연구소는 2000년부터 지방농업개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농민을 농업기술 확산·보급의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쿠바에서도 기존의 농업 연구성과는 시험연구기관 내를 오갔을 뿐 현장에 제대로 보급되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에 농민들이 다양한 농사실험을 하도록 북돋우고, 농민이 직접 연구자이자 강사로서 역할을 늘리는 내용이 지방농업개혁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농업 연구소들은 지역에서 농민들이 진행하는 실험을 지원하는 데 집중했고, 나아가 농민들 스스로가 연구자가 되도록 도왔다.

프로그램 추진 과정에서 어떤 농민은 해당 프로그램 참여 과정에서 작두콩, 나비콩, 까치콩 등의 풋거름 활용을 실험했는데, 그 결과 풋거름이 잡초를 억제하고 토양의 생물다양성을 키운 바 있다. 또 어떤 농민은 ‘토양보전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지역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한 농사방식 추구활동을 전개해 성과를 거뒀다.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지만, 다양한 시도를 지원하고 농민을 농업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쿠바의 프로그램은 대안농업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낳았다.

농민 ‘주체성’ 발휘할 구조 만들어야

쿠바 사례를 소개한 신승철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은 “쿠바의 농업은 농장과 농업연구소 간, 농민과 연구자 간 구분을 허물며 진행됐다”며 “기후변화 시대의 농업은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 모험 등 색다른 시도를 필요로 하는 농업이다. 따라서 정부 농업정책과 농정구조도 농민의 실험과 도전을 부추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도 잘 이용한다면 ‘농민들의 실험 현장’으로 이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지역에선 농민들의 힘으로 농지 주변 수계 보전정책, 마을 토종씨앗 확대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충남 보령에선 후배 농민들이 고령 농민들로부터 전통농업 기술을 배우느라 열심이다.

김석기 운영위원은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에서 고령 농민들이 가진 농사 지혜를 후배 농민들에게 전수·기록함으로서 미래 대안농업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게 필요하다”며 “이는 현재 소외당하는 고령 농민들을 다시 농업의 주체로 세우는 일로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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