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정개혁, 사업보다 사상이 필요하다
[농정춘추] 농정개혁, 사업보다 사상이 필요하다
  •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9.10.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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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문제가 뉴스를 잠식하고 있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가하는 작금의 상황에 분노하고 있고, 우리나라에 처음 발병한 ASF로 인해 현재 농촌 현장은 전시에 준하는 삼엄한 상태이다. 국민들이 검찰에 대해 공포와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아무리 정권이 바뀐다한들 우리의 정당한 권리와 고귀한 생명이 그들의 손아귀에 저당 잡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투표를 잘 해도 우리는 현 세대는 물론이고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도 희망을 전해줄 수 없다.

검찰이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검찰은 관료제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막강한 정보력,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지현 검사가 얘기했듯 조직을 배신하면 생존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오늘날의 검찰조직이다. 이처럼 극단적 관료제가 오늘날 검찰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관료제의 기원은 전염병에서 기인한다.

평생 지식, 권력, 형벌, 정체성 등을 연구한 미셀 푸코는 오늘날 국가권력의 시작을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기원을 뒀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구획을 정하고 관리체계를 만듦으로써 국토 전역을 감시체계로 만들었다. 국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바로 처단하거나 감옥에 가두고 감시했다. 더욱이 국가폭력에 대항한 사람을 정신이상자로 낙인을 찍어 감옥에 가두거나 병원에 감금해 감시하고 훈육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감옥, 병원, 학교, 군대 등의 건물 형태는 비슷하다. 한 곳에서 모든 곳을 조망할 수 있는 감시체계, 전문용어로 판옵티콘이라고 하는데 정보사회에서 그 정점에 검찰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없는 정보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정보도 감추는지 잘 봐왔다.

나는 문재인정부가 지난 2년 동안 검찰개혁(사실 농정개혁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의심이 들고 조국 민정수석의 많은 인사 검증 실패에 실망도 했지만 그래도 그의 검찰개혁을 믿는 것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소신 발언 때문이다. 한 보수 야당의 청문위원이 사노맹사건과 관련해 조국 후보자에게 “지금도 사회주의자냐”고 묻자, 그는 “나는 사회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며 우리나라에 사회주의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자칫 보수 야당의 색깔론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의 대답은 사실 놀라웠다.

사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료제라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 그 관료제가 파시즘으로 이어져 체제 작동이 안 된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여겨지지만 개방적 관료체계를 갖춘 자본주의는 승리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진정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결론에는 의문이 많다. 사회주의라도 개방적 체계를 갖춰 유연한 관료제를 만들면 얼마든지 체제를 유지할 수 있고, 자본주의라도 폐쇄적이고 권위주의로 치닫는다면 그 체제는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역설적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미국은 지난 대선 때 소위 사회주의자로 여겨지는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대만계 아시아인 앤드류 양이 민주당 내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핵심 정책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다. 이미 미국은 1980년대부터 알래스카주에서 시민영구배당 이름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부의 불평등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하고, 인종차별, 폐쇄적인 보호무역을 일삼고 있는 미국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주의적 정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호불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전환기, 지금과 같이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한 사회,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쌈박한’ 사업과 관료제에 매몰되지 말고 유연한 사상을 바탕으로 사람을 향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3연속 고시 출신의 행정 관료가 농정의 수장인 상황에서 농정은 혁신보다는 관리체제가 지속될 공산이 크다. 벌써 농식품부 장관 일행이 ASF 현장 방문 시 의전과 홍보에 치중하다 오히려 ASF를 확산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바라건대 ‘관외’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경직된 관료제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관료제는 외부의 충격이 없다면 바뀌지 않는 속성이 강하다. 검찰개혁이든 농정개혁이든 개혁은 그냥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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