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최저농산물가격을 헌법으로 보장받는 꿈을 꾼다

  • 입력 2019.09.29 18:00
  • 기자명 강선희(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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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경남 합천)
강선희(경남 합천)

8월 14일 제주를 시작으로 마늘, 양파 재배면적 사전조절을 위한 전국순회워크숍이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충남에서 진행됐다. 가격폭락의 원인이 농민의 과잉생산에 있으니 농민이 알아서 파종면적을 줄이라는 내용으로 주산지 지자체와 농협 담당자를 모아서 진행하려던 농림축산식품부의 계획은 올해 출범한 마늘·양파생산자협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수립단계에서 폐기됐다.

마늘·양파생산자조직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가격폭락의 결정적 원인이 농민의 과잉생산이 아니라 정부의 수급정책 실패임을 확인하는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을 시작하기 전에 생산자들과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고 이미 마늘, 양파 농가가 내년 파종계획을 끝내고 준비하던 시기였기에 마늘, 양파 재배면적 사전조절워크숍은 전혀 실효성이 없는 형식적인 요식행위임이 증명됐다

6차례 워크숍 대응투쟁의 성과로 농식품부에서는 마늘, 양파 수급조절을 위한 생산자와의 간담회를 2차례 진행했다. 의무자조금, 휴경보상제, 농협계약재배 확대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대로 된 농업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는 데 모든 이들이 의견을 같이 했다.

마늘·양파생산자협회 창립 이후 대규모 상경집회, 농식품부와 주 1회 간담회와 담당자 통화, 워크숍 대응 투쟁, 기자회견 등을 하면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의 끝에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위한 충분한 예산확보를 헌법으로 정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

왜 노동자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인 임금은 헌법으로 최저임금이 보장되며 국가권력이 강제할까? 노동자의 임금은 공적인 영역이고 농민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인 농산물가격은 매우 사적인 영역인가? 그래서 공공재인 농산물 가격을 그냥 시장에 맡기는 것인가?

이 의문의 끝에 최저임금제에 대해 찾아봤고 최저임금법에 맞춰 최저농산물가격법을 만들어보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봤다.

최저농산물가격제란 국가가 국민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곡식과 채소, 그리고 육류의 가격결정 과정에 개입해 농산물의 최저가격기준을 정하고 농업인에게 이 수준 이상의 농산물 값을 지불하도록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식량주권을 책임지는 농업인을 보호하는 제도이다. 국가는 이 제도를 헌법으로 정하고 최저농산물가격제를 시행해야 한다(2020년 10월 제정).

2016년 10월은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시던 백남기 농민의 사망으로 촛불항쟁이 시작된 해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최저임금법이 실시됐던 것처럼, 촛불항쟁을 통해 수입농산물 범람으로 인한 국민건강에 대한 위협이 높아지고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주권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시점에 ‘최저농산물가격제’를 법으로 정한 것이다.

최저농산물가격제의 목적은 농업인에 대하여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하여 농업인의 생활안정과 건강하고 질 좋은 농산물 생산을 꾀함으로써 국민 건강과 식량주권을 보호하는 길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최저농산물가격법 제1조).

최저농산물가격제의 실시로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받은 농업인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상 수준으로 인상되면서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들이 저농산물 가격정책으로 인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해 발생하던 생활고 해소와 도농소득 격차가 완화되고 소득분배 개선에 기여한다. 둘째 농업인에게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해 줌으로써 농업인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농업인의 사기를 올려주어 농업생산성이 향상돼 건강하고 질 좋은 농산물을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한다. 셋째 저농산물 정책을 바탕으로 농산물 가격을 시장에 맡기는 것을 지양하고 적정한 농산물 값을 정해 공정한 사회를 위한 토대를 책임지도록 한다(참고로 인터넷으로 최저임금제를 검색하여 비교해보시라).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최저농산물가격위원회를 생산자조직이 주도해서 만들어 매년 주요농산물에 대한 가격결정을 하는 협상이 진행되고 가격결정에 대한 농식품부 장관의 보고 기사가 9시 뉴스 주요기사로 보도되는 멋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을 생산자조직이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그 길에 전국의 농민이 함께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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