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제36회] 경성트로이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농민소설가 최용탁님의 근대사 에세이를 1년에 걸쳐 매주 연재합니다. 갑오농민전쟁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대사를 돌아보며 민족해방과 노농투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 입력 2019.09.29 18:0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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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이재유

1937년 4월 30일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는 호외를 발행한다. 한 인물의 검거 소식을 대서특필한 것인데 기사 제목은 ‘집요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궤멸되다’였다. 한 사람의 체포를 조선공산당의 궤멸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인물은 이재유였다. 사회주의 운동에 가혹한 탄압이 가해지던 30년대에 맹활약한 이재유를 빼놓고는 해방투쟁사의 커다란 구멍을 메울 길이 없다. 이재유는 누구였던가.

1905년 함경북도 삼수에서 화전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재유는 고학을 위해 상경했다가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에 건너오기 전부터 이미 사회주의 사상을 깊숙이 받아들이고 있던 이재유는 니혼대학에 입학한 후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서 활동하면서 무려 70여 차례나 일경에 연행될 정도로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결국 4차 공산당 사건으로 국내로 압송된 그는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아 형무소에 갇힌다. 그러나 형무소는 그에게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만난 이현상, 김삼룡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트로이카’라는 조직을 결성한다. 이현상은 훗날 남부군 사령관으로 빨치산 투쟁의 신화가 된 인물이고 김삼룡은 하룻밤에 세 개의 조직을 만든다는 전설적인 조직의 귀재였다.

국내의 해방투쟁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의 상황에서 많은 운동가들이 해외로 떠난 시기에 경성트로이카는 놀라운 활동을 펼쳤다. 그야말로 신화적인 조직과 투쟁이었다. 경성트로이카는 불과 일년 만에 조직원이 160여 명으로 불어났고 각 성원들은 학교와 공장에서 맹휴와 파업을 조직했다. 대표적인 것이 1933년 하반기에 서울의 8개 고무, 섬유 공장과 7개 학교의 연쇄 파업과 동맹휴학이었다. 또한 <적기>라는 기관지를 간행하였는데 이들이 내세운 강령은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기치로 대토지소유의 해체, 7시간 노동제 확립 등을 혁명의 주요 임무로 삼았다. 이재유는 기존의 소련 코민테른 노선을 맹목적으로 따른 국제주의 운동 방식을 거부하고, 구체적 삶에 뿌리박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실천운동을 주장했다. 그는 국제주의자들이 무시하였던 민족문제를 중시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의 체포를 보도한 경성일보 호외판
그의 체포를 보도한 경성일보 호외판

경성트로이카는 1934년에 지도부가 검거되어 1차로 와해되지만 이재유는 두 번이나 감옥에서 탈출하여 ‘경성 재건그룹’이라는 2차 트로이카를 조직한다. 이후 검거와 탈옥, 조직의 재건이 마치 드라마처럼 계속되는데 이재유는 무려 여섯 번이나 일제의 감옥에서 탈옥하여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이재유는 최종적으로 검거되어 8년의 옥살이 끝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옥사한다. 감옥 안에서도 재소자들에게 사상 교육을 시키는 등 투쟁을 이어갔기에 일제는 6년 형기가 끝난 후에도 보호관찰법으로 붙잡아두었다. 결국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마흔을 넘기지 못했다.

이재유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는데 그 중에도 일제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 미야케 교수 사건이었다. 이재유는 탈옥 후에 어느 집 마루를 뜯어낸 후 한 달 이상을 은신하며 일경을 피했는데 그 집이 다름 아닌 경성제대 법대 교수인 일본인 미야케의 관사였던 것이다. 그 자신이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던 미야케는 이재유의 인품에 감화되어 그를 숨겨주고 밤마다 조선의 해방과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토론했다고 한다. 이 일로 미야케는 교수직을 잃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강단에 서지 못했다.

이재유가 수감된 이후에도 트로이카 그룹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현상, 이관술, 김삼룡 등은 1939년에 박헌영을 끌어들여 ‘경성 콤그룹’을 조직한다. 해방 당시에 전국에 2만여 명의 사회주의자들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이 콤그룹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일제가 1급 불령선인으로 분류했던 이재유는 대중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다. 어쩌면 이재유의 시대 전체가 안개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반공이 진실 위에 군림한 현대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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