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휴지기, 참여 농가만 고통 받는다

휴지기 참여 농가, 일방적 계약해지·입식 지연으로 경영 피해 심각
미참여농가만 혜택 누렸다는 연구결과도 … 정부 대책 언제 나오나?

  • 입력 2019.09.29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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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지난 겨울철 오리 사육제한(오리 휴지기)에 참여한 농가들이 심각한 경영피해를 입어 보완대책이 시급하다. 정부의 방역정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의의 피해를 입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광역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 겨울에도 오리 휴지기가 실시될 전망이다. 농식품부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 관계자는 “한국오리협회 등 관계자들과 논의 중이며 기획재정부와 예산을 협의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충청북도는 지난 27일 가축방역심의회를 열고 자체적으로 오리 휴지기 세부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상혁 충청북도 농정국장은 “주변국인 중국, 대만, 러시아에서 고병원성 AI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올 겨울철에도 위험도 평가 및 농식품부 선정기준을 반영해 휴지기 농가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오리 사육 밀집지역인 전라남도 역시 오리 휴지기 시행을 전제로 행정조치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현장의 오리농가들은 휴지기 참여 의지가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지난 2차례의 오리 휴지기 시행에 참여한 농가들이 막대한 경영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전남 영암군에서 오리 5만수를 사육하는 한 오리농민은 “지난 2월 28일까지 휴지기에 동참한 뒤 오리 입식을 기다렸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 4월말이 되니까 A업체가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면서 “계약서상 7개월이 남았는데 소용없더라. 결국 5월말에야 다른업체와 계약해 오리를 입식할 수 있었다”고 사정을 전했다. 반년 가까이 오리를 사육하지 못하면서 사육회전을 3번이나 놓친 것이다.

역시 휴지기에 참여했다가 A업체에게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영암군의 또 다른 오리농민은 “우리농장은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인근농장에서 발생해 휴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휴지기 보상금이 아무리 많아도 차라리 오리를 사육해서 정상적인 대우를 받고 싶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적이 없는 농장은 휴지기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래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면한 농가들 사정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전남 나주시의 다른 오리농민은 휴지기에 참여한 뒤 4월 중순에야 오리를 입식할 수 있었다. 이 오리농민은 “4개월이나 쉬었으니 사정이 급한데 업체에선 병아리 수급 문제로 늦어진다고만 하더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수당 712원 보상금이 나오는데 겨울철에 오리를 사육한 농장은 수당 2,000원 넘게 받았다. 휴지기에 참여한 농장이 있었기에 다른 농장들이 오리를 사육할 수 있었는데 정작 방역대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너무 큰 피해를 받고 있다”고 농식품부에 보완책을 요청했다.

계열업체 입장에선 휴지기 참여 농장보다 겨울철에 오리를 사육할 수 있는 농장을 선호한다. 비록 휴지기 참여 여부는 농장의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한다고 하나 위험도 평가 등에서 발생 확률이 높은 농장은 울며 겨자먹기로 휴지기에 참여했던 게 현장 상황이다. 때문에 오리농민들 사이에선 A업체가 이같은 농장은 겨울철 오리 사육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사전에 정리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전영옥 한국오리협회 광주전남도지회장은 “정작 정부의 방역정책에 적극 협조한 농가들이 부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라며 “휴지기 동참 농가들이 부당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답답한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전 지회장은 “휴지기 시기도 참여농장이 한번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시기를 분산해야 병아리 수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인배 동국대학교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팀이 지난 6월 발표한 오리 사육시설 개선방안 조사연구에 따르면 오리 휴지기제로 오리가격은 상승했지만 전체 농가소득 증가효과는 마이너스였으며 미참여농가만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균형대체모형을 통한 2017년 오리 휴지기와 고병원성 AI의 효과 분석 결과, 총 388억원의 사회적 후생이 감소했으며 산업연관분석에선 총 1,206억원의 생산액이 감소한 것로 나타났다. 이에 지인배 교수팀은 “오리 휴지기는 사회적 후생 감소와 참여농가간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만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결과적으로 고병원성 AI를 예방하려면 사육시설 개선 및 방역 강화처럼 보다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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