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이게 나라냐”

  • 입력 2019.09.29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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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3년 전 오늘(25일)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끝내 운명을 달리했다. 고인의 죽음은 새 세상을 염원한 이들에게 밀알이 됐다. 국민들은 적폐청산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고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사상 첫 모내기대선을 통해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사회 전 분야에서 적폐청산과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농정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민수당 도입, 개방농정 철폐, 농산물값 보장, 남북 농업교류 실시 등 농민들의 삶과 밀접한 의제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까. 박근혜정부에서 하한선을 모르고 떨어졌던 쌀값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개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지방선거 출마에 이은 5개월여의 농정 공백은 문재인정부의 무농정 무대책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렇게 농정개혁의 ‘골든타임’이라는 정권 초반을 허무하게 소비해 버렸다.

올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던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농업계의 시선은 냉담했다. 만시지탄이라는 것이다. 2018년산 쌀 목표가격은 2019년 쌀 수확기인 지금껏 정해지지 않았다. ‘쌀값은 농민값’이라고 작년에 벼농사에 나선 농민들의 연봉이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얘기다.

배추, 양파, 마늘, 고추에 이어 복숭아, 사과까지 품목을 막론하고 올해 초부터 시작된 농산물 가격폭락은 농민들의 주름진 얼굴에 더욱 그늘만 드리웠다. 최근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 최초로 발병해 확산 기로에 놓여 있다. 양돈농가에겐 청천벽력이다.

대표적인 농도인 전남과 전북도의회는 도민들의 열망으로 만들어낸 농민수당 주민조례 청구안에 아랑곳없이 한참 후퇴된 농민수당안을 들이밀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식량자급률 24%, 농업소득 20년째 정체 등 수십 년 이어진 개방농정에 알곡은 없고 쭉정이만 남은 농민들에게 없는 곳간을 더 열라고 부추기는 행위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배경이다.

오늘 전국의 농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고 백남기 농민 3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농정대개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었던 3년 전의 외침은 아직 유효하다. 국정농단 세력도 여전히 건재하다. 농민들은 정권만 바뀌었을 뿐 변한 게 없다고 일갈한다. 전봉준투쟁단으로 각인됐던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는 이제 문재인정부와 국회를 겨냥하고 있다. “정녕 이게 나라냐”고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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