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지도 모르고

  • 입력 2019.09.29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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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마늘값이 한참 폭락하던 지난 여름, 거창지역의 여성농민들 앞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농민수당 이야기를 하다가 인생이 운빨 아니냐고 했습니다. 가령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는 내 남편뿐인데 하필 원예작물도 과수농사도 아닌 좁은 농지에서 노동강도는 최고로 세고 부가가치는 참으로 낮은 마늘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밤낮 기온차가 많이 나서 명품사과를 생산하는 당신들은 남해 농민들보다는 훨씬 운빨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며 웃었습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운빨에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지역 간이나 산업 간에 운빨의 격차를 조금 줄여내자, 그것이 농민수당이 되지 않겠냐고, 그래야만 합리적인 세상에서 농민들이 살맛나지 않겠냐고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운빨 좋은 거창의 사과농민들이 태풍의 힘에 여지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물대로 여문 과일에게 그 여린 꼭지하나로 버티기엔 너무 센 바람이었겠지요. 어떤 농장은 사과나무가 전부 쓰러진 곳도 있다 하니 사과농가에 대한 마늘농사꾼의 부러움도 일장춘몽에 불과했습니다.

안 그래도 사과농사가 타 작목에 비해 소득률이 더 높은 탓에 저 강원도까지 과잉으로 심어져 사과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예견되었다 하지요? 그래서 바람을 안 맞은 경북내륙의 사과농민들은 안도의 한숨이라도 쉬고 있는 건가요?

좁은 지역에서만 비교할라치면 이도저도 운빨이겠지만 크게 보면 사람들의 정치빨에 좌우되는 것이 농민들의 처지입니다. 마늘농사가 좀 힘들기는 해도 수입량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노동대가는 맛볼 것인데 그러면 거창농민들 부러워 할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사과나무가 그리 많이 심어진 것도 다른 농사가 돈이 안 되는 까닭일 테고, 잘 모르긴 해도 밀식재배 추세에 천근성인 사과나무 뿌리가 약해져 바람에 쓰러졌을 테지요. 무엇보다 한 철에 몇 개씩이나 올라오는 강력한 태풍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는데 산업화된 국가들이 탄소배출량 절감에 합의를 못하고 있으니 어디 순전히 우연한 운빨만으로 설명될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합니다.

특정할 것도 없이 농사작목 마다 가격폭락을 거듭하고 있고 기후변화의 폭도 더 커졌고, 심지어 무시무시한 가축 전염병까지 창궐하였으니 농민들의 상황이 전에 없는 위기감이 돕니다. 여기에 소값까지 떨어지면?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연일 내년 총선에 목을 매고서 정쟁만 앞세우고 있습니다.

농업상황을 놓고 정치권이 도미노 삭발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까? 반농업적 인사의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하는 꼴을 보여줄 수는 없나요? 제대로 된 농업정책을 놓고 여야가 죽기살기로 밤새 붙어보는, 그래서 농민들은 차라리 신나는 광경을 절대로 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이 가을 농민들의 삶이 이렇게도 처절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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