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전라북도 의회가 공권력까지 투입하며 도민들이 제시한 농민수당 조례 대신 전북도의 제출안을 받아들였다. 전북도가 삼락농정위원회를 내세우며 자랑하던 민관 농정협치는 완전히 깨진 모양새다. 한편 한발 앞서 주민발의 조례 청구운동을 진행했던 전남 역시 도민들이 발의한 조례안이 외면 받고 있어 농정당국과 자치의회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라북도 농민수당 주민청구 조례제정 운동본부(운동본부)는 지난 24일 전북도의회 농산업경제위원회(농산경위) 의원들과 면담하고, 도청에서 제출한 농민수당 조례안과 주민조례 청구안을 병합심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농산경위는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두 조례안은 농민수당의 금액과 지급 대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전북도는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각 농가에 연 60만원 지급을 주장했고, 운동본부는 개별 농민에게 연 12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어 청구운동 기간 동안 약 3만여 명의 청구인 서명을 받아냈다.
농민들은 농산경위가 병합심의를 거부하자 상임위 처리가 예정돼 있던 25일부터 의회 청사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에 참여한 농민 30여명은 위원장실과 회의실 앞을 지키고 있었으나, 농산경위는 이곳을 피해 알 수 없는 곳에서 조례안을 심의해 본의회 상정을 마쳤다. 농민들은 “도의회 역사상 초유의 폭거와 만행”이라며 전북도의 농민수당 조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이튿날인 26일 경찰은 도의회 청사의 출입을 전면 봉쇄했다. 운동본부는 이날 현장에서 성명을 내고 ‘저항권을 발동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건물 내 곳곳은 방화 셔터로 가로막혔고, 경찰병력 수백여명이 본회의장 진입을 차단했다. 농민들의 돌발행동을 우려한 듯 청사 1층에는 에어매트까지 설치됐다. 청사 내부에 고립된 농민 30여명은 오후 2시 시작되는 본회의의 물리적 저지에 나섰으나 경찰의 호위 속에 도착한 도의원들의 입장을 막지 못했다.
이대종 고창군농민회장은 본의회장 돌입이 저지되고난 뒤 "오늘 우리의 행동이 아무런 가치가 없거나 헛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이번 진통으로 인해 그 동안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언론들에게 도와 농민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알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본회의에서 찬반토론 과정을 거쳐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 ‘전라북도 농업·농촌 공익적 가치 지원에 관한 조례안’은 찬성 23표, 반대 10표, 기권 1표로 최종가결됐다. 최영심 의원은 표결 전 자유발언에서 “농산경위가 회의실을 벗어난 장소에서 심의했다”라며 “병합심사 혹은 심의재고를 간절히 요청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반대 토론에 나선 최영일 의원은 “이렇게 촉박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거나 의원들 간에 치열한 토론을 거쳐 다음 회기에 처리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한편 전남도의 조례안과 이보라미 도의원(정의당)의 발의안, 그리고 주민발의 조례안을 병합심의한 전라남도의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역시 지난 20일 전남도가 제출한 발의안에 가장 가까운 대안을 제시했다. 이 의원 등은 재심의를 요구하며 본회의장 앞 철야농성을 시작했고, 주민발의 조례 청구운동을 펼쳤던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민중당 전남도당 등은 지난 23일 전남도의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김성일 농수위원장을 면담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들은 전남도의회 본의회가 열리는 30일 제2차 도민대회를 예고하고 있어 또 한 번 큰 충돌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