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농민들이 문재인정부의 농정에 결국 사망선고를 내렸다. 근조 상여를 메고 국회로 행진한 농민들은 문재인정부 농정과 국회, 그리고 이 땅에서 자란 농산물들의 장례식을 치렀다.
25일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박행덕, 농민의길)과 사단법인 전국마늘생산자협회‧전국양파생산자협회‧전국배추생산자협회는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백남기농민 정신계승! 농정개혁쟁취!’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전국의 농민 2,500여명이 상경해 농민과 농촌에 대한 무관심을 멈춰 달라 외쳤다.
박행덕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대회사에서 “최소한의 쌀값 안정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고, 정치권은 농산물값 폭락에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농업예산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라며 “수입농산물 정책, 저농산물값 정책, 농지투기와 농업예산 축소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오늘의 투쟁은 지난 2년간의 문재인표 무책임 농정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투쟁”이라고 선언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기일에 열린 이번 대회는 백남기 농민의 정신 계승을 강조했다. 정한길 가톨릭농민회장은 추도사에서 “정부가 철학이 없어도 양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농민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켜야할 것”이라며 “백남기 농민이 죽음을 맞으며 요구했던 것은 계속 이 땅에서 농사짓게 해달라는 소박한 주문이었다. 우리는 생명평화의 일꾼이 꿈꿔 온 세상을 지키고 이루며 살아야하겠다”고 말했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백남기 농민의 정신을 계승하고 제대로 된 농업정책을 만들어내라고 하는 농민들의 요구는 농민들의 요구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요구이며, 이 땅의 모든 민중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촛불로 만들어진 이 정부가 개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규탄할, 세상을 바꿔낼 민중대회를 오는 11월 30일 광화문 한복판에서 연다. 정책을 바꾸고 촛불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할 힘찬 투쟁을 함께 열어나가자”고 격려했다.
올해 수많은 품목에서 발생한 폭락 현상은 변동직불제 폐지 논란과 더불어 대회 개최의 주요 배경으로 꼽혔다. 전국마늘생산자협회‧전국양파생산자협회‧전국배추생산자협회 대표자들은 공동으로 나선 연설에서 “농산물 가격을 시장에 맡겨서는 연쇄 폭락을 막을 수 없다”라며 “농민에겐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국민에겐 안정적인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해 식량주권을 확립하는 과학적 대안이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라고 강조했다. 또 “수입농산물을 그대로 두고는 어떤 농산물 값 대책도 실효성이 없다”라며 “수입농산물 비관세장벽 운영에 생산농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트럼프의 개도국 지위포기에 당당히 맞서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동 (사)전국쌀생산자협회(쌀협회) 회장과 이종섭 쌀협회 충남도본부장은 쌀생산자들의 입장을 전했다. 이들은 “수매제가 없어지고 난 뒤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피눈물을 흘렸나”라며 “가격 안정대책이라는 자동시장격리제는 매입량과 시기, 가격을 정부가 결정하는데 공공비축미 제도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지적했다. 또 “휴경명령제는 농민경작권을 정부가 마음대로 제한하는 반헌법적 조항이며, 농업의 공익기능을 증진한다며 교육의 의무를 부과하고 어길 시 직불제 등록을 제한하는 독소조항도 포함돼 있다”고 비판했다.
대회 결의문 말미에 “농민이 부르는 장송곡이 너희들의 사망선고이며 상여가 너희들의 무덤이다”라고 쓴 농민들은 꽃상여를 메고 ‘문재인정부 농정’, ‘농업무시 무능국회’의 장례 행진을 시작했다. 농민들이 상여를 멘 것은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정국 이후 약 3년만이다. 상여에 붙은 쌀의 영정을 비롯해 배추, 양파, 마늘을 비롯한 수많은 농산물들의 영정도 뒤따랐다.
더불어민주당사를 지나 국회 앞에 도착하자 상여꾼을 맡은 농민들이 상여를 멘 채 국회로 향하려다 경찰에 저지당하는 소동도 잠시 벌어졌다.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 도착한 농민들은 부서진 상여와 영정들을 한데 모아 불태우는 화형식을 진행했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우리 농촌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보루인 WTO 개발도상국 지위마저도 포기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라며 “태풍이 남긴 피해와 돼지열병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나 많이 모인 것은 가격 안정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어떠한 농정도 현장은 수렴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옥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도 “우리는 오늘 문재인정부 농정을 상여와 함께 태웠다. 쌀값, 농산물 가격 폭락에 대해 농민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노동자, 민중과 함께 다시 한 번 희망을 만들어나가자”고 독려했다.
“농촌에도 사람이 있어요” 구조신호 보낸 여성농민들
300여명이 넘는 여성농민들도 이번 대회에 참석한 가운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대회 참가에 앞서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구조신호’를 보내는 상징의식(사진)을 펼쳤다.
여성농민들은 최근 흥행에 성공한 국내 재난영화 ‘엑시트’에서, 등장인물들이 화재가 발생한 빌딩 옥상에서 구조신호를 보내는 장면을 참고했다. 여성농민들은 하얀 소복을 입고 'H'모양으로 앉아 호미로 땅을 두드리며 영화에 등장한 방법대로 구조신호를 보내고, ‘우리농민 다 죽는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하라’, ‘우리농민 다 죽는다 농업예산 확대하라’ 등의 구호를 있는 힘껏 외치며 당‧정‧청에 농업의 위기를 알렸다.
이날 구조신호를 보낸 여성농민들을 대표해 대회 무대에 오른 류화영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농민들 앞에서 다시 한 번 구조신호를 보내며 여성농민들의 결의를 알렸다.
“이번 태풍에 떨어진 과수들 모습이 우리 농민들 모습과 같습니다. 농민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모아 공공수급제를 요구하고 다양한 정책 대안을 지시하지만, 정부도 국회도 누구 하나 귀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성농민들이 나섰습니다. 이렇게 상복을 입고 볏단을 들고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더 이상 갈 데 없는, 위기에 빠진 농업과 농민을 당장 구하라고. 더 이상 농민의 숨통을 조이지 말고, 정부와 국회에 맞서 당장 농업농민을 구조하라 외쳤습니다. 우리 힘으로 세운 촛불정부가 제대로 민중을 위해 정치할 수 있도록 오늘 이 자리뿐만 아니라 11월 30일 민중총궐기에서도 여성농민이 앞장서서 싸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