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이대희(35)씨가 나무에서 갓 딴 오미자 열매를 성큼 내밀었다. “일단 먹어보세요. 정신이 번쩍 날겁니다.” 맛보기 전까진 무슨 말인지 몰랐다. 손바닥에 놓인 울긋불긋한 오미자 열매를 한 번에 입속에 털어 넣고 씹기 시작했다.
강렬한 신맛이 압권이었다. 머리털까지 쭈뼛 서는 느낌에 이어 몸에 따스한 기운이 돈다할까, 장시간 운전에 잠시 흐트러진 정신이 또렷해질 정도였다. 그 맛에 염치불구하고 하나 더 얻어먹었다. 신맛은 여전히 강렬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오미자 수확이 한창이다. 시고, 달고, 맵고, 쓰고, 짠 다섯 가지의 오묘한 맛을 갖춰 오미자(五味子)라 불리는 그 열매다. 경북 문경시는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오미자 산업 특구’다.
지난 16일 동로면 적성리의 한 오미자밭을 찾았다. 10여명의 여성농민들이 자신보다 훌쩍 큰 오미자나무에서 열매를 따느라 여념이 없었다. 머리 위로 팔을 길게 뻗기도 하고 허리를 숙여 몸을 낮추기도 했다. 그런 모습의 농민들 옆 바구니마다 오미자가 한 가득씩 쌓여 있었다.
농장주인 이정재(65)씨와 아들 대희씨는 열매가 담긴 바구니를 수레로 옮기고 빈 바구니를 밭 곳곳으로 나르느라 쉴 틈이 없었다. 이 와중에도 이씨 핸드폰이 수시로 울렸다. 주문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밭일로 전화를 길게 하지 못함에 양해를 구하면서도 살뜰히 주문을 챙겼다. 핸드폰을 허리춤에 찔러놓고 한 숨 돌리던 이씨가 말했다.
“올해는 농사가 더 힘들었어요. 지난 5월에 냉해가 있었고 수확 앞두고는 또 서리가 내렸어요. 생산량도 예년보다 줄 것 같아요. 그래도 힘내야죠. 농장 이름도 없지만 가을만 되면 우리 오미자를 찾는 이들이 많거든요. 생과도 있고 엑기스를 찾는 분들도 계세요. 오늘이 올해 첫 수확이라 옆 동네 상주에서 일손도 더 불렀어요.”
오전 내내 수확한 오미자를 집으로 옮겼다. 양지바른 마당에선 남편인 이상희(71)씨가 오미자에 섞인 나뭇잎이나 불순물 등을 걸러내는 선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마당 한 편엔 선별된 오미자가 20kg 컨테이너 상자에 담겨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가을볕을 오롯이 머금은 오미자는 한층 더 붉게 빛났다. 오미자 농사만 25년, 남편 이씨가 당부하듯 말했다. “농사 참 열심히 했어요. 곧 축제(20일부터 사흘간 동로면 일원에서 ‘2019 문경오미자축제’가 열렸다)도 있지만 우리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오미자 많이 드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