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안 해도 된다고 누가 말 좀 해보이소

  • 입력 2019.09.22 18:28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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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추석을 앞두고 몇 주간 계속된 비와 흐린 날씨. 땅과 하늘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민에게는 추석의 풍요로움 보다 명절이 지나도 괴로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추석이 빠르나 느리나, 추석 전에 비가 많이 오거나 안 오거나. 농민에게 안전장치가 있어 속상해도 근심까지는 되지 않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고 보름달에 기원해본다.

그래도 추석은 즐거워야 하는 명절,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처음으로 나를 생각하는 추석에 도전했다. 365일 중 이틀씩 두 번의 큰 명절과 제사는 외며느리인 나에게는, 아이가 4명씩이나 되는 나에게는 과로를 동반한 노동이자 버거운 과제였다.

제사가 많았던 친정집에서 익숙해진 정서에 나 스스로도 명절과 제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출산을 하고 몸조리 기간에도 우는 아이를 업고도 꿋꿋이 찌고, 삶고, 지지고, 볶고 하며 의무를 다했으므로 당당한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힘겨움과 스트레스는 남편의 몫으로 눈치주고 신경질 내는 것으로 풀기도 하고….

이번 추석엔 벗어나자고 남편과 의견을 모으고 처음으로 차례상을 차리지 않기로 했다. 추석 전날 저녁은 아이들과 외식하고 추석날 아침은 서로를 쳐다보며 멀뚱멀뚱 서성거리다 결국 밥은 먹어야 했기에 나물 몇 종류와 탕국을 끓이고 조기를 구워 먹었다. 그제야 먹어야 될 것을 먹은 것만 같은 만족감을 느꼈다. 이런 명절이 어색하고 낯설지만 스스로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명절에 겪는 고단함도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라는 의무감에 비롯된 피해의식도 내 몫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리고 명절 전날까지 바쁜 일과를 보낸 나는 그래도 무방하다. 괜찮다.” 설령 “아이가 컸더라도 바쁘지 않더라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가정에서 엄마, 며느리는 해야 되는 일이 많듯 마찬가지로 마을공동체 문화가 남아있는 시골마을에서도 새댁이 해야 되는 일이 많다. 하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못하고 칭찬받지 못한다. 딱히 잘못한 일이 없어도 같이 하지 않았다면 눈치를 봐야 한다. 농촌마을 문화가 이를 탈피하지 않는다면 농촌마을에 들어와 살 수 있는 젊은 여성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크게 또렷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할 수 있고 어울릴 수도 있으며 여성이 농촌마을에 부담 없이 들어와 살 수도 있다. 지속가능한 가족공동체와 마을공동체를 위해서라도 “안 해도 괜찮다. 네 마음가는대로 해도 된다”고 그렇게 마음의 여백을 두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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