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에 의한 개도국 지위 포기가 불러올 파장

  • 입력 2019.09.22 18:23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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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미국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4가지 조건에 한국이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위를 자국의 의지가 아닌 강대국의 요구에 떠밀려서 그들이 정한 일방적인 기한에 맞추기 위해 서두른다는 것이 너무나 비참하다. 이러한 사태는 한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압박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7월 26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WTO 개도국 지위 혜택 중단과 관련한 발표 이후 국내에서 나온 반응은 한결같았다. 한국은 더 이상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을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이 제시한 그 틀 안에서 모든 것이 분석되고 논의됐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과 함께 미국이 WTO를 탈퇴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등 여러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어떠한 목적을 갖던 그것은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입장에 따라 결정해 발표한 것일 뿐이다. 국제사회에서 대부분 국가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이 아니라 미국이 정한 기준, 미국이 정한 기한일 뿐이다.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 WTO가 출범된 이후 자기선언 방식으로 개도국 지위가 결정됐다. 오랜 관행으로 모든 나라가 이에 따랐다. 160여개 WTO 회원국 중 한 나라가 불쑥 제시한 기준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면 의사결정을 위한 합의체계는 필요가 없다.

우리 농민들은 한결같이 WTO 체제를 반대해왔다.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쌀 시장 전면개방을 막기 위해 수많은 농민들이 힘겹게 싸웠다. 그러나 언제나 정부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WTO 농업협정문에서 결정된 것이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WTO에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농산물 가격이 아무리 폭락해도 수입되는 외국농산물은 제한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린 100% 농산물 수입개방화 시대에 살게 됐다.

우리 농업·농민은 WTO 체제 내에서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더 이상 WTO만의 문제에 머물러 있지 않다. 2004년 발효된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동시다발 체결된 FTA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관세는 감축되고 철폐될 예정이다. 수많은 환경들이 우리농업을 위협하고 옥죄어 오고 있지만 정부는 WTO, FTA 체결국의 눈치가 먼저다.

개도국 지위 포기가 농산물 관세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예측만 있고 불확실성만 가득할 뿐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결과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이 될 것이지만 미국이 정한 기한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만 난무할 뿐 정작 당사자 농민들의 의견을 우선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미국의 혜택과 권리가 약화된다고 판단된다면 WTO의 결정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의 권리와 혜택에 문제가 생긴다고 판단된다면 WTO를 거부할 수도, 개도국 지위 포기 압박을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개도국 지위 포기 논의에 앞서 우리 농업이 얼마나 많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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