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공익형 직불제의 우려와 대응

  • 입력 2019.09.22 18:00
  • 기자명 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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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 직접지불제 관련 예산을 2조2,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지난 9일에는 박완주 의원이「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정은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특히 올해는 주요 농산물 가격이 연쇄적으로 폭락했다. 쌀 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구조적인 과잉 생산 문제가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은 농정 틀 전환을 예고한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유럽연합(EU)의 직접지불제 개혁 과정은 우리나라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 과정과 유사하다. 1992년 EU는 농업 보조금 지원 방식을 농산물 가격지지에서 생산자 지지로 전환했다. 이것이 직접지불제이다. 직접지불제는 정부의 개입가격 즉, 농산물 지지가격을 인하하는 대신 보조금을 농가에게 직접주어 소득 손실을 보상하는 정책이다. 실제 1992년 개혁 당시에는 곡물 지지가격을 30% 낮추고 가격 인하분의 100%를 보상했으나, 2000년부터는 지지가격을 15% 인하하고 인하된 가격 폭의 50%를 보상하는데 그쳤다. 점차 EU 직불제는 지지가격을 낮추고 품목에 상관없이 면적에 비례해 지급하는 방향으로 개혁된 것이다. 대외 무역장벽 완화 및 지지가격 인하라는 정책적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측면이 강했다.

한편, 2000년대부터 EU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줄이는 대신 농업의 환경적 기여 촉진이라는 목표로 직불금 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직불금 지원 조건으로 환경, 식품안전, 동물 및 식물 건강, 동물복지 등과 관련된 상호준수의무를 이행하도록 한 것이다. 2010년부터는 환경적 기여가 높은 상호준수의무 조건을 전제로 지급하는 녹색직불 비중을 확대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공익형 직불제안과 EU의 직불제 개편과정을 살펴본 결과, 우려할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쌀 변동직불제 폐지로 인한 시장 가격 인하를 보상할 만한 예산확보가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2017년 기준 OECD 데이터에 따르면 직불금 비중이 EU는 농업총생산의 9.3%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1.8%에 불과하다. 농업보조금 중에서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EU는 54.3%인 반면, 한국은 26.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직불제 예산 규모를 2022년까지 농업예산 대비 약 30%인 5조2,000억원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매년 1조원씩 확대해야 달성 가능한 규모다. 한편으로는 직불제 예산 확대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 작목 전환에 따른 가격하락 같은 풍선효과를 줄이기 위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콩, 밀 등 여타 작물 식량자급률 제고 목표 설정과 수매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

두 번째 우려할 점은 직불제 수령과 대응하는 상호준수의무를 어느 정도로 까다롭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상호준수의무가 까다로우면, 이행을 점검하는데 행정적 비용이 많이 들고 자칫 무임승차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상호준수의무 수준이 낮으면 농업의 환경적 기여 촉진에 대해 지불할 명분이 크지 않다. 상호준수의무 사항이 획일적이어도 지역별로 상이한 농민의 생산관련 지식 및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상호준수의무 사항의 난이도에 따라 이행 점검과 교육이 필요한지 농가지도체계 구축이 필요한 수준인지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완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에는 공익형 직불제의 세부 기준이 들어있지 않다고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초기 의도와 달리 시행 과정에서 본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어느 한쪽 치우침 없는 중도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공익형 직불제가 농정 틀 전환의 신호탄이돼, 현실에는 연착륙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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