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고생들의 촛불
서울 여고생들의 촛불
  • 관리자 기자
  • 승인 2008.06.28 09: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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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 조원희/경북 상주시
요즘 연일 수많은 촛불들이 서울의 밤을 밝히고 ‘협상무효’ ‘고시철회’ ‘이명박 퇴진’을 외치고 있다. 농사짓는 입장에서 한-미 FTA가 가져올 궤멸적 타격을 익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저지투쟁 과정에서 많은 노력과는 다르게 대세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패배적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루하루 패배주의의 싹을 키워가고 있던 차에 기적은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서울의 여고생들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와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고생들이 밝힌 촛불은 50일이 넘게 타오르면서 시민 사회단체, 직장인,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들, 예비군, 대학생, 민주노총을 필두로 한 노동자들의 동참과, 6월10일의 완강하면서도 즐거운 대규모투쟁, 인터넷 토론 등- 감동의 물결의 연속이다.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이명박과 한나라당, 조중동을 궁지에 몰아넣고 촛불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라”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열기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상주에서도 매주 토요일 마다 여섯 번에 걸쳐 촛불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 촛불소녀들이 있다면 상주는 촛불 아줌마들이 있었다. 농번기에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 우리 농민들을 대신해서 참교육학부모회의 가녀린 엄마들이 먼저 나선 것이다.

국회의원부터 시장, 도의원, 시의원까지 100%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현수막을 만들고, 유인물을 찍어서 돌리고, 농민회를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나에게는 사회를 맡아 달라고 했다. 순전히 나설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초조하게 기다리던 5월 17일 토요일 저녁 상주문화회관 광장 앞에는 300여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열기는 뜨거웠다. 농민들, 선생님들, 천주교 신자들, 그리고 중 고등학생들과, 엄마아빠와 함께 참여한 어린아이들까지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었다. 나의 아내와 아이들 셋도 함께....

사회자인 내가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동안 여러 집회에서 연설과 사회도 보았고, 가두방송과 수많은 전경들 앞에서도 씩씩하게 마이크 잡고 할말 다하고, 농장에 체험을 오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농사와 우리 먹거리의 중요성을 늘 교육해 오던 터라 약간의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마이크를 들고 촛불들 앞에 서자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 눈망울들이 “아저씨! 지금까지 어떻게 했길래 우리까지 이렇게 길거리에 나오도록 했어요?” 하고 따져 묻는 것 같았다.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겨우 수습하고 촛불문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 가사를 붙인 노래를 시작으로 문화공연과 영상상영, 자유발언들이 이어지면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첫 번째 촛불문화제의 밤은 깊어갔고,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외치면서 시내 중심가를 돌아오는 행진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후로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촛불문화제는 계속해서 진행 되고 있다. 여섯 차례 촛불문화제의 붙박이로 사회를 보고 있는 나의 마이크 울렁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여전히 버벅거리고 있다. 아마도 재협상을 통해 광우병 쇠고기와 한-미 자유무역 협정을 막아내서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될 때 비로소 울렁증이 나을 것 같다.

조원희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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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02 11:58:12
가녀린 엄마들이란 표현이 약간 거슬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