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너머 펼쳐진 황금빛 들녘에 평화가 깃들길

[강원 철원] 수확도 건조도 함께하니 신명 나네

  • 입력 2019.09.08 18:00
  • 수정 2019.09.16 16:5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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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검문초소를 통과하자 군데군데 황금빛 논이 펼쳐졌다. 강원도 철원군은 이남지역에선 일찍 수확을 시작하는 편에 꼽힌다. 이미 지난달 26일 첫 벼베기가 시작됐다. 지난 2일 철원군 민통선 너머 논에서도 수확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논에선 콤바인 2대가 이미 절반 남짓 벼베기를 하고 있었다. 잠시 뒤, 다가오는 콤바인에 놀란 고라니 새끼가 쏜살처럼 튀어나와 건너편 논으로 숨는다.

바쁜 와중에 기자를 만난 김희용씨는 “민통선 안에 3만평(9.9㏊) 정도 벼농사를 지었고 그제부터 수확을 진행하고 있다. 품종은 오대미다”라고 설명했다. 전국쌀생산자협회 강원본부장인 김씨는 45년 전부터 민통선 너머 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4월 30일 모내기를 했는데 가물어서 물을 대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그래도 지역농민들과 함께 수확작업을 하니 신명이 난다”고 흐뭇해했다. 공동작업을 같이하는 농민은 김씨를 포함한 여섯명. 이들은 10여년 넘게 서로 의지하며 손발을 맞춰왔다.

지난 2일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 통제구역 내 논에서 벼 수확이 한창이다. 이날 수확한 오대미는 건조·도정 작업을 거쳐 추석 전 쌀로 출하될 계획이다.
지난 2일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 통제구역 내 논에서 벼 수확이 한창이다. 이날 수확한 오대미는 건조·도정 작업을 거쳐 추석 전 쌀로 출하될 계획이다.

함께 수확작업을 하던 황용하씨는 “5일 전까지 수확한 벼는 추석 전에 쌀로 출하할 수 있다”면서 “벼 건조는 인근 농민건조장에서 하루이틀 사이에 끝난다”고 말했다. 철원군 동송읍에 위치한 농민건조장은 지역농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건조기 6대를 배치하고 있다. 건조기를 통해 벼를 말리면 자연건조보다 일손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수확철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승립 농민건조장 대표는 “건조장은 농작업대행도 하고 있어 건조부터 수매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엔 논 35만평 가량에서 추수한 벼를 처리했다”고 전했다. 10여년 넘게 형성된 이 지역 농민들의 공동작업은 품앗이의 협동정신을 자연스레 계승하고 있다.

수확작업 도중 농기계업체에서 콤바인을 점검하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올해 새로 구입한 콤바인에 하자가 생겨 콤바인회사에서도 직원을 파견했다고 한다. 농기계업체 관계자는 “벨트 파손이 의심돼 점검을 왔다. 회사도 현장에 첫 투입된 콤바인이라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콤바인 정비가 끝날 무렵, 점심시간이 됐다. 이른 새벽부터 콤바인도 농민들도 쉴 틈이 없었다. 점심상엔 닭볶음탕과 여러 밑반찬이 올라왔다. 김 본부장의 아내인 원선자씨의 솜씨다. 원씨는 수확철 공동작업을 하는 장정들의 점심도 챙겨야 하고 다가오는 추석 차례상 장보기도 준비하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후식은 논 옆 하우스에서 농사지은 흑수박이 올라왔다. 달달한 수박 맛이 여름과 가을 사이를 오간다. 삼엄한 분단의 휴전선이 저 산 너머 가로 짓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이쪽 논을 수확한 콤바인이 저쪽 논으로 가듯 수박 맛이 여름과 가을 사이를 넘나들듯 저 선은 언제 넘을 수 있을까.

김용빈 철원군농민회장은 “이 지역 논은 북에서 내려온 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검문초소를 지날 때도 저절로 긴장된다”면서 “마음 편히 평화롭게 농사를 지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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