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81] 새가 날아든다!

  • 입력 2019.09.08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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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옥수수는 흰 수염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끝이 마르면 수확할 때가 다된 것을 의미한다. 농촌살이 첫해, 그러니까 2016년의 일이다. 봄에 옥수수를 파종하고 약 3개월이 지나 이제 수확을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다음날 아침 밭에 나갔는데 아뿔사 지난 밤에 멧돼지가 옥수수 밭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적이 있었다. 옥수수 대궁을 쓰러뜨리고 잘 익은 옥수수만을 용케도 골라 먹고 사라졌다. 전날 땄어야 하는 건데 하루 더 미루다 멧돼지에게 상납하고 말았으니 화도 나고 황당했던 기억이 새롭다. 멧돼지는 초겨울에도 지렁이를 먹으려고 사과밭을 온통 헤집어 놓기도 했고 가끔 사과나무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들엔 멧돼지만 있는 게 아니다. 봄에 사과나 채소류의 새순을 잘라먹는 고라니도 있고, 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을 주로 쪼아 먹는 비둘기 같은 조류도 있다. 그밖에도 청설모, 들쥐 등 속을 썩이는 녀석들이 수없이 많다.

농사관련 이론서적에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균병과 해충에 의한 피해와 방제대책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나 대책에 대해서 다루는 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야생동물의 피해보다는 병균이나 충의 피해가 당연히 컸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그 다음해엔 밭 가장자리를 뺑 둘러 철망을 쳐서 멧돼지나 고라니는 이제 들어오지 못한다. 비둘기가 좋아하는 밀과 보리 같은 곡식은 아예 심지 않으니 걱정할게 없었다. 그 대신 옥수수도 심고 멧돼지가 좋아하는 감자와 고구마도 마음 놓고 조금씩 심었다. 그렇게 농장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런데 올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추밭의 고추가 조금씩 빨갛게 익어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익은 부위만 뭔가가 파먹는 것이 아닌가. 들쥐의 소행을 의심했다. 그런데 들쥐가 가느다란 고추 줄기까지 타고 올라가 고추를 갉아먹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이렇게 상처가 나면 그 고추는 건조하는 과정에서 물러지거나 썩기 때문에 아예 수확할 필요가 없다. 밭에서 빨갛게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아마 아예 수확을 못할 지경일 것 같아, 요새는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조금만 불그레해지면 따서 후숙한다. 고추 색깔이나 상태가 영 신통치 않지만 방법이 없다.

고추뿐만 아니라 몇 그루 심어놓은 옥수수도 대궁은 멀쩡하게 서있는데 거의 다 익은 옥수수 알만 용케도 뜯어 먹는 것이었다. 멧돼지의 소행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면 누구의 소행일까. 쥐가 옥수수 대궁을 타고 기어 올라가 옥수수를 갉아 먹었을까.

옆집 농민이 고추밭에 은색과 빨간색의 반짝이 줄을 여러 줄 둘러놨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새를 쫒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웃 고추밭에도 나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범인은 비둘기, 꿩 같은 조류였다. 쥐가 범인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더니 그는 분명 쥐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고추나 옥수수를 부리로 쪼아 먹은 것이 분명했다. 쥐가 갉아 먹은 흔적과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철망으로 멧돼지와 고라니만 못 들어오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하늘에서 새가 날아드니 방법이 없다. 24시간 쫓을 수도 없고. 지난해까지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는데 올해는 유독 조류피해가 심각하다. 기후·환경의 변화가 조류에게도 영향을 미쳐 안하던 짓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년에는 새가 날아들지 못하도록 하늘에 망을 쳐야 할지 모르겠다.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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