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생물다양성 강화, 농민과 자연이 공생하는 길

  • 입력 2019.09.01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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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논생물다양성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주목되고 있다. 이는 공익형 직불제 강화 논의와도 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정부에서나 농업계에서나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논생물다양성 강화를 통한 친환경농업 발전 및 건강한 먹거리 생산, 생태환경 보전 등의 이익을 심사숙고할 시점이다.

물 한 방울 속 ‘가시시모물벼룩’ 네 마리

섬서구메뚜기, 등검은실잠자리, 가시시모물벼룩, 호르바드깨알소금쟁이… 이름도 생소한 생물들을 지난달 26일 처음 만났다. 그들을 만난 곳은 동물원이나 곤충 표본실, 수목원이 아니었다. 농민들이 벼농사 짓는 논에서 만났다.

지난달 26일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 무수골의 생태논을 찾았다. 이곳은 서울의 몇 안되는 생태논 중 하나다. 이날 무수골 생태논에 동행한 한살림연합 소속 논살림모임 방미숙 대표는 쟁반으로 논바닥 흙과 물을 떠서 기자에게 보여줬다. 쟁반에 고인 물속엔 깔따구, 물톡톡이, 물벼룩, 갈거미, 씨벌레, 논우렁이 등의 미생물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방 대표는 현미경을 주며 쟁반 한쪽에 놓인 물방울을 확대해서 보라고 했다. 물방울 속엔 머리 위에 점이 달린 네 마리의 미생물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름하여 ‘가시시모물벼룩’.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라 처음엔 ‘다시심어물벼룩’으로 잘못 들었다. 또 다른 물방울을 보니 어릴 적 학교 실험실에서 본 뒤 20년 동안 못 봤던 플라나리아가 있었다. 칼로 잘라도 재생하는 그 플라나리아 맞다.

논 주변엔 잠자리들이 날아다녔고,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뛰어다녔다. 심지어 그 잠자리와 메뚜기, 방아깨비들도 한 종류가 아니었다. 잠자리 중 등에 푸른색 줄이 난 잠자리가 있었다. ‘등검은실잠자리’라는 종이다. 방 대표는 “등에 푸른 줄이 난 실잠자리도 등검은실잠자리와 아시아실잠자리가 또 다르다”고 설명했다.

논 구경을 마친 뒤 돌아가려던 순간, 논 한구석의 거미줄과 거미를 발견했다. 노란 빛깔 몸통에 검은 줄무늬가 있었다. 이름하여 ‘호랑거미’다. 거미와 잠자리가 있다는 건 그 논이 생태보전이 잘 되고 깨끗한 논임을 뜻한다.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호랑거미'. 잠자리와 거미가 논에 산다는 건 논의 생태환경이 잘 보존됐다는 뜻이다.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호랑거미'. 잠자리와 거미가 논에 산다는 건 논의 생태환경이 잘 보존됐다는 뜻이다.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등검은실잠자리'.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등검은실잠자리'.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메뚜기.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에서 만난 메뚜기.

농민에게도 좋은 논생물 공생

이처럼 논은 눈에 보이는 생물들 뿐 아니라 논바닥 물 한 방울에도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로 가득하다. 말 그대로 ‘생물자원의 보고’다. 무수골 생태논 또한 주말마다 체험학습하러 오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논생물다양성 강화는 학생들만을 위한 게 아닌, 농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충남연구원 연구자들은 2013년(당시 충남발전연구원) 발표한 보고서 ‘농업의 지속성 제고를 위한 생물종다양성 증진 방안’에서 “논 생물다양성은 작물 성장에 필요한 논의 환경을 개선해 작물의 생장을 도우며, 천적을 통해 병해충에 의한 피해를 줄여 건강한 작물로 자라게 한다”며 “농산물 또한 생물다양성의 일부이므로 풍부한 생물다양성은 곧 풍성한 농산물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치지 않은 논에는 생물들이 모인다. 깨끗한 논에 나타나는 잠자리와 개구리, 거미는 해충을 잡아먹어 벼를 지켜준다. 이 개구리와 거미, 잠자리를 잡아먹고자 백로, 제비, 두루미 등의 새들이 나타난다. 새들의 배설물은 거름이 돼 겨울 동안 논의 흙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 논에선 실지렁이들이 자라나는데, 올챙이와 잠자리 유충은 이들을 잡아먹으면서 개구리와 잠자리로 자라난다. 이곳에서 살다 생을 마감하는 미생물들도 분해되면서 또 다른 퇴비가 된다. 이런 식으로 생태주기가 반복된다. 생물들의 자연스러운 삶이 논에서 반복될수록 논은 더욱 비옥해지며, 쌀맛과 건강성도 향상된다.

논생물다양화 필요성의 국제 공인

논생물다양성 강화의 중요성은 세계적으로도 공인됐다. 2002년 제8차 람사르총회(스페인 발렌시아)에선 “논의 습지적 가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농업정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당사국 정부는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이 채택됐다. 2008년 제10차 람사르총회(대한민국 창원)에선 ‘습지시스템으로서의 논의 생물다양성 강화’ 결의문 채택을 통해 다양한 야생생물 서식처로서 논의 역할에 주목했다.

제10차 람사르총회 직전부터 한국에서도 논습지 생태보전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본격화됐다. 2006년 생협들과 환경운동단체 등 16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한국논습지네트워크(논습지네트워크)’를 결성했다. 논습지네트워크는 제10차 람사르총회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논생태조사를 진행했고, 마찬가지로 논생태보전 운동을 벌이던 일본 시민사회와도 연대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제10차 람사르총회에서 논생물다양성 강화 결의문 채택을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논생태보전 활동을 지원한 일본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관련 정책은 아쉽다. 우선 논생태보전 관련 기관인 농식품부와 환경부 간 공조체계가 부족하다. 농식품부는 농산물 생산 중심 관점으로, 환경부는 환경보전 중심 관점으로 접근하다 보니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기 어렵다.

방미숙 대표는 “지난해 한일 논생물조사교류회 때 일본에선 농림성·환경성·문부과학성 등 8개 부서 공무원들이 같이 와서 2박 3일 내내 동행했다. 왔던 공무원들도 책임자들인 서기관 급들이었다. 공조도 잘 된다. 그만큼 일본에선 람사르협약 결의를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 밝혔다.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의 토종벼 조성지. 생태친화적 농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토종벼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서울 도봉구 무수골 생태논의 토종벼 조성지. 생태친화적 농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토종벼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논생물다양성 강화정책 나서야

논생물다양성 강화를 위해선 논생물조사부터 진행돼야 한다. 어떤 생물이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 연구해야 생태친화농업 방식을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논생물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생물학자도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논살림모임 등 논습지네트워크 참여 시민단체들이 직접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이 함께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생물종 분류도 어려웠다. 물벼룩만 봐도 종류가 다양한데 현장조사자들로선 정확히 어떤 물벼룩인지 분간이 어렵다. 온갖 책들, 심지어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나온 논생물 관련 서적을 찾아봐도 정보가 없기에 그냥 ‘물벼룩류’라고 써야 했던 경우도 많았다.

“일본에선 시민단체들의 논생물조사 시 반드시 생물학자들이 함께 가요. 정부 차원에서 논생물다양성 강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거죠. 이렇게 체계적으로 움직인 결과, 일본은 현재까지 국제생물다양성 당사국총회에 약 6,000여종의 논생물을 보고했어요. 우리나라는 그 10분의 1인 약 600여종을 보고했고요. 사실 우리도 일본 못지않게 많이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정확히 어떤 종인지 분류할 체계가 미비해 미분류종이 많아서 그렇죠. 600여종의 생물을 분류한 것도 큰 성과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해요(방미숙 대표).”

농민들이 생태친화적 농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 지원도 절실하다. 생태논의 경우 생물들의 배설물과 미생물의 시신들이 부숙돼 토질을 상승시키는 데 3~5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은 생산성 감소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생태논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친환경농가들에 대한 지원 강화정책이 공익형직불제 등 정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한국논습지네트워크의 회원단체인 황새생태연구원 김수경 박사는 “기존의 아스팔트 배수로 대신 생태친화형 배수로를 개발해 생태논에 어류들도 유입될 수 있도록 농식품부에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생태형 농업기반시설 확충을 통해 더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사에 뛰어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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