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 부부의 죽음, 그리고 친환경농업

  • 입력 2019.09.01 18:00
  • 수정 2019.09.03 09:24
  • 기자명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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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

지난 7월 31일 새벽, 제주에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던 농민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판로의 어려움이 반복되고 계속 늘어가는 빚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안전장치 하나 없이 농산물 판매에 대한 책임을 농가가 고스란히 감당하도록 만든 정부 정책의 현주소와 친환경농업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친환경농업을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일해 온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애통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친환경농업은 1970년대 농약과 화학비료가 땅을 죽이고 생명을 죽인다는 농민들의 자각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통일벼를 중심으로 증산정책을 실시하던 정부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선배들은 유기농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생협 소비자들과의 직거래를 시작으로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되고, 1998년 친환경농업 원년선포와 2001년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이 시행되면서 유기농업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2001년 5,000호, 전체 농가대비 0.3%에 불과하던 실천농가가 2009년 약 20만호(12.1%)에 이를 정도로 10여년 만에 약 40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2010년 저농약 신규 인증이 폐지되고, 판로 확대 부족과 부실인증 사건을 계기로 인증관리가 강화되면서 친환경인증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농가대비 4.9%인 5만7,000여농가로 친환경농업은 위축돼 있는 현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기농업은 식품안전과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우려, 환경보호 및 동물복지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년 10% 이상씩 급성장하고 있다. 유기농업 선진국인 독일도 2017년 현재 8.2%인 유기농업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린다는 정책을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기후변화 위기 속에서 동물복지와 환경보호라는 가치소비가 확산되는 세계적인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침체된 국내 친환경농업은 이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실천농가의 판로를 확대하는데 가장 유효한 정책은 공공적 영역에서 친환경농산물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친환경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친환경식재료 사용비율은 지자체의 재정상황과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초·중학교 친환경식재료 비율은 약 61.2%인 반면 경남의 경우 약 30.7%인 상황이다. 학교급식을 기반으로 지역 내 공공기관이나 유아, 군인 등에 대한 친환경식재료 공급을 늘려야 되나 지자체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박완주 의원이 발의한「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개정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친환경농업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친환경농산물 우선구매 대상 기관 및 단체를 기존 공공기관과 농업관련 단체장에서 학교, 유치원, 군대 등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우선 구매에 따른 해당 기관 및 단체에게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본 개정안은 침체돼 있는 친환경농업인의 소득 증대는 물론 환경보전, 생물다양성 증대 등 친환경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해 친환경농업 생산·소비 단체들은 그동안 ‘먹을거리 안전성’만을 중시했던 지난 20여년을 반성하고 ‘생태환경보전과 건강한 먹거리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생에 기여하는 친환경농업’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그리고 실천의 일환으로 안전성 중심에서 생태·환경적 가치를 되살리고자 친환경농업 정의 개정을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달 28일 공포된 친환경농어업법 개정안은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이제 친환경농업은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환경·생태적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스스로의 노력과 더불어 국민들에게 그 공익적 가치를 알려나가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환경적 가치를 고려한 소비야말로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환경농산물의 우선구매 법률 개정안과 친환경농업에 대한 정의 개정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노력은 판로가 없어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는 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농사짓는 농부가 살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으로 내모는 우리 농업의 모순적인 구조를 바꾸어 내는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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