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발표] 청년농업인정책, 현장의 목소리를 담다

  • 입력 2019.09.01 18:00
  • 수정 2019.09.01 21:17
  • 기자명 박경철·장수지·장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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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장수지·장희수 기자]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청년농업인정책, 현장의 목소리를 담다’ 토론회에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청년농민들이 패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청년농업인정책, 현장의 목소리를 담다’ 토론회에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청년농민들이 패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엔 청년농민들의 절절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목소리가 흘러넘쳤다. 청년농업인연합회와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장이 주최하고 <한국농정>이 주관한 ‘청년농업인정책, 현장의 목소리를 담다’ 토론회를 통해서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청년농민의 목소리를 지면에 옮긴다.
 

농업정책, 대농 위주에서 벗어나야

심보란
(전남 장성)

최근 친환경 인증을 신청했다. 974㎡, 300평이 조금 안 되는 규모다. 심사는 무사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감독관님께서 “심사비용을 지원받으려면 신청 면적이 990㎡ 이상이어야 한다. 타 지역에서 이미 거절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인증을 위해 준비한 토지는 974㎡가 전부였고, 부족한 16㎡ 때문에 75만원의 심사비용을 매년 부담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다급히 찾아간 면사무소에서 면적에 상관없이 심사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지방비로 지원하는 지원사업의 경우 지자체마다 기준이 다르고 면적 등 기준에 못 미치면 지원이 제한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소농이라는 이유로 시작도 못해본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농업에 뛰어든 청년들은 농지를 구하는 것부터가 큰 난관이다. 농어촌공사를 찾아가면 주인 없는 땅을 찾아오라고 말한다. 또 농지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는 대개 농기계 진입이 어렵거나 배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흔히들 중소농이 무너지면 농업이 무너진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농산물 도매시장과 대형마트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중소농이 쇠퇴하고, 대농에게 모든 것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대농이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으며 농촌에 일자리가 존재한다면 청년들이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

청년이 농업을 등지지 않도록, 가족 중소농이 농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청년여성농민이 살고 싶은 마을

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
(강원 홍천)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의 귀농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은 집이 있고, 그 집엔 생활할 때 필요한 가재도구가 완벽히 갖춰져 있다. 곶감 걸이까지 있다. 텃밭엔 한겨울에 나가서 뜯어먹을 배추와 토마토도 있었다. 많은 이들의 삶에 힐링을 주는 영화였지만 현실 속 청년여성농민에게 편히 다가오는 내용은 아니었다.

우선 집을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우리 마을엔 1년에 두 번 생활단수를 한다. 마을회의에선 신규 상수도 가입자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고, 귀농귀촌을 하려면 관정을 파야 한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밭을 구하는 것도 문제다. 아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농사를 지으라하지 임대차계약서를 안 써준다.

미혼여성의 경우 더 힘들다. 구두 계약 시 남편 등 남자를 데려오라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농기계 얘기도 있다. 지난해 관리기를 구입했다. 동영상으로는 쉬워 보였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됐다. 임차한 땅까지 가려면 트럭에 싣고 가야 한다. 산지 한 달도 안 되서 후회했다.

옥수수 장사를 하다가 봉변을 당할 뻔 한 적도 있다. 가족이나 지인이 없는 혼자 사는 여성의 귀농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신청자에 한해서 농지나 주거지 주변에 CCTV 등의 안전보호장치를 설치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평등 교육이다. 도시 근로자는 필수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받는다. 농촌에도 의무화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승계농 세대갈등 해결할 제도 필요

박주원
(경기 여주)

청년농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우리 사회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우선 청년농민들이 영농에 지속적으로 종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창구가 없다.

5만명이 안되는 현재 청년농민의 숫자는 20~30년 후 국내 농업인구의 실제 수치가 될 수 있다. 청년농민을 늘리기 위해선 외부 유입보다 현재 농촌 내 청년농민들이 행복해야 한다. 청년농민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 이탈의 이유를 찾아 해결하는 것이 정책의 방향이다.

여러 형태의 청년농민 중 가장 많은 형태는 승계농이다. 승계농들은 부모님이 일궈놓은 농업기반 덕에 소득이 높음에도 농촌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이탈의 이유가 소득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부모와의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갈등은 크게 △평생 농사를 지으며 경험·연륜을 쌓아온 부모님과 농업대학에서 배운 과학적 기술을 시도해보고 싶은 승계농 간의 갈등 △농장으로 매일 출퇴근하며 일하지만 월급이 아닌 용돈을 받아 겪게 되는 갈등 △부모님에게 농사는 삶의 터전이므로 휴일과 근무시간이 따로 정해져있지 않아 생기는 세대 간의 갈등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제도의 힘을 빌어 가족농이 현대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무적으로 승계농과 부모님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교육과 거점별 상담센터 운영이 필요하다. 기존 가족농의 문제는 기업과 같은 논의구조, 소득분배, 업무분장이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농 운영의 매뉴얼과 모델 개발을 제도화해야 한다. 내부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매개체로서의 제도가 절실하다.


지원사업, 이대로는 안 된다

권양덕
(충남 부여)

지난 2013년 아버지 고향인 충남 부여로 귀농하며, 농촌 캠핑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유농업’ 개념을 접목해 농촌 관광을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관련 정보를 얻고자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고, 4-H 연합회원을 대상으로 한 ‘영농정착지원사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귀농 3년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공고를 보고 사업 성격에 맞춰 계획서를 작성해 지원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탈락했다.

알고 보니 사업 선정방식에 문제가 많았다. 기술센터와 얼마나 돈독한 관계를 쌓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사업 대상자는 흔히 말하는 ‘짬밥’순으로 배정됐다. 터무니없었지만 기술센터나 군청 어디에도 항의할 순 없었다. 농촌에선 공무원들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지원사업에 심한 좌절감을 느꼈지만 어느 순간 돌아올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곧 사업자 선정이 무한경쟁체제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무한경쟁체제라고는 하지만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단체 대표 등이 심사위원으로 구성돼 있어 심사는 여전히 주관적이었다.

최근 횡행하는 ‘컨설팅’도 지원사업의 폐해 중 하나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치유농장 조성을 위한 보조금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의무사항에 컨설팅이 있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컨설팅은 담당자와 대화했던 내용을 정리한 게 전부였다.

정리하자면, 농민은 컨설팅 업체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지원사업 역시 공정성을 찾아 청년농민에게 희망차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농업인 교육 내실화해야

임현구
(대전)

청년농업인 양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농업교육이 교직자 양성에서 농업인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청년농업인연합회 연구·조사자료를 확인해보니 쓸 데 없고 형식적인 교육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꼭 들어야 하는 의무교육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세금으로 이뤄지는 교육 수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방법의 형태다. 대략적으로 선도농민이나 전문가들이 나와서 강의를 한다. 대부분 강의형식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나 효율성과 흥미도가 떨어진다.

강의에서 탈피해 흥미위주의 교육을 편성해야 한다. 퍼실리테이션, 해커톤, 게이미피케이션, 스마트러닝 등 교육법도 발전하고 있다. 이를 농업교육에 적용해야 한다.

농업교육의 대안을 만들기 위해선 교육을 편성하기 전 대상자에 대한 수요조사가 필요하다. 예산을 투입해 모형을 개발하고 강사 역량강화도 뒤따라야 한다. 이런 절차가 진행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출혈이 있을 수 있지만 꼭 필요한 단계다.

우리 가족은 3대가 포도농사를 지었고, 과거 포도농업 마에스터를 꿈꿨다. 우리 지역에 교육과정이 없어서 타지역 교육을 받으려 했지만 지역민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이게 현실이다. 교육은 대승적으로 지역구분을 없애야 한다.

모든 교육은 재밌어야 한다. 평등해야 한다. 최대한의 교육자가 최소한의 교육대상을 가르쳐야 한다. 청년농민이 만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구성했으면 한다.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 확산의 필요성

정익환
(강원 원주)

농업은 식량생산 이외에 다양한 기능을 부가적으로 수행한다.

△깨끗한 수자원의 생산 △환경 및 전통문화 보존 △식량주권 보호 등 이러한 농업의 기능을 공익적·다원적 기능이라고 부른다.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는데 이러한 농업의 가치는 기존 식량생산의 기능보다 5배 이상 높게 평가된다. 따라서 유럽과 일본에서는 직불금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농촌 보호에 힘쓰고 있다.

스위스는 관광수익의 일부를 농민에게 지급해 주변 경관유지 및 관리 의무를 부과한다. 이는 다시 관광 수익을 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일본 구마모토현의 경우 지하수가 부족해 2모작이 가능한 논을 1모작만 재배하고 남은 기간엔 담수하는 대신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는 깨끗한 지하수를 만드는 가장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방안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농민에게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고려해 보조금을 지급하자고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농촌에서 공익적·다원적 기능이 수행 또는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야 한다. 농업이 단순히 식량생산만 하는 산업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재의 성격과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성공적인 정책효과를 창출하려면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농업정책 수행에 앞서 농업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많이 알리는 일은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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