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름 정산 - 단합대회의 민주화

  • 입력 2019.08.25 18:11
  • 수정 2019.08.25 18:12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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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어느덧 여름이 끝나갑니다. 이제 여름나기는 더위와의 전쟁을 치르는 듯 힘겨운 살이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여기 남녘은 가뭄까지 겹쳐서 밭작물들이 맥없이 늘어져 있다가, 이 여름이 끝날 이 즈음에서야 열 오른 대지를 식혀주고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단비가 내립니다.

그 더운 날들을 무얼 하고 지냈을까? 하고 돌아보니 지난 여름에는 유독 행사가 많았습니다. 마늘값 폭락으로 각종 회의나 간담회를 진행했고 힘을 행사하는 농민대회도 있었습니다. 또 단합대회 행사도 많았습니다. 해마다 하는 행사이지만 올해는 남편과 같이 안팎으로 집행책임자를 맡다 보니 여느 해보다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그리해서 무엇을 얻고자 했고 무엇을 얻었는가? 준비 과정은 매끄럽고 무엇보다 꿈 꿀 수 있었는가, 그 정산을 하고자 합니다. 사실 여름철 농민단체 단합행사에 드는 노력과 비용은 상상초월입니다. 자발적인 찬조금은 물론이거니와 기관단체의 후원까지 보태야 하고, 당일 행사를 치러내는 관계자의 노고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값비싼 행사의 유래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세벌까지 논매기를 마친 농민들이 백중잔치를 하며 고단함을 풀던 것을 농민단체별로 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봅니다.

사람이 모이는 것만큼 값지고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또 사람이 모이지 않고 이루어진 역사가 무엇 있습니까? 게다가 늘 수고로운 농민들의 단합이야 더할 나위 없지요. 할 수만 있다면 더 걸판진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단합행사의 면면을 살펴보노라면 고민거리가 많습니다. 먹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 장만하고 시중드는 사람의 역할이 정해져 있습니다. 불 앞에서 정신없이 고기를 굽고 삶거나 시중드는 사람(상당수가 여성)도 있고 아침부터 약주를 해서 불콰한 얼굴도 있으며, 이 자리 저 자리로 다니며 친분을 과시하는 이도 있습니다.

세상의 여러 불평등은 고정성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하지요? 남녀가 그렇고 노소가 그러하고 지역이 그렇고 장애와 비장애를 보는 시각의 고정, 역할의 고정이 불평등을 초래한다고들 합니다.

한여름 단합대회가 알차게 단합도 하고, 어렵게 모였으니 주장도 낼 수 있는 값진 자리로 거듭나려면, 모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장으로 돼야겠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당장 준비하는 메뉴부터 달라져야 하겠지요.

행사가 진행될 때 미리부터 삶아야 하는 고기는 제외하고, 또 시작부터 끝까지 불 앞에서 구워야 하는 것도 제외해서, 행사에 집중하고 마치는 때에 서로 간에 조금만 손을 보태어 배식만 하면 되는 것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이 사소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곧 단체가 성장하는 것이고 품이 커지는 것이겠지요. 이것을 이름하여 단합대회의 민주화라고 해봅니다.

‘에잇, 그러면 단합대회가 무슨 재미가 있겠어? 먹는 재미가 제일이지’라고 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것도 일종의 관습이나 관례인 셈이지요. 일단 한 번 바꿔 보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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