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빨갱이였다가, 비국민이었다가…

  • 입력 2019.08.2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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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정부기관에서 친환경농민을 ‘농약 몰래 치는 범죄자’마냥 취급하는 게 힘들다.”

그 동안 현장에서 만나온 친환경농민들로부터 가장 자주 들은 이야기 중 하나다. 소위 결과 중심 친환경인증제, 즉 잔류농약이 얼마나 농산물과 토양에서 나오는지만 따져온 한국의 인증제도는 농민들을 사실상 예비범죄자 취급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친환경농민이 범죄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군사독재 정권은 식량증산 명목으로 통일벼‘만’ 대대적으로 심게 했다. 통일벼 증산을 위해 대대적으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려야 했다. 통일벼가 아닌 다른 벼를 심으면 공무원들이 모판을 엎어버렸다.

당시 생명농업을 표방하며 유기농사를 지었던 친환경농업계 원로들은, 통일벼 대신 유기농 벼를 재배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고, 심지어 ‘빨갱이’로 몰렸다. 당시 군사정권 입장에선 정부 시책에 안 따르면 빨갱이였으니까.

세월이 흘러 1998년, 정부의 ‘친환경농어업법’ 공표와 함께 친환경농업은 공인됐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기 이래 농약과 화학비료 중심 농정에 익숙했던 관료들은 여전히 친환경농업과 농민을 불온시했다. 그들에게 친환경농민은 ‘언제 농약칠지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농약 친 농산물 팔면서 유기농민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친환경농업 정책, 특히 인증제는 그러한 의심을 기본 전제로 깔고 만들어졌다.

의심만으로도 모자라, 이젠 왜 친환경농사를 짓느냐는 식의 시선까지 보낸다. 최근 만났던 친환경농민으로부터 “공무원이 ‘풀 자라면 제초제 치면 된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이전에 농약으로 오염된 땅에서 유기농사를 지어 땅을 살리겠다는 농민들에게 관계당국이 농사를 불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국가가 친환경농민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소위 ‘비국민’ 취급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16년 동안 생명농업을 고수해 오면서 판로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던 제주도 농민 부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욱 강해졌다.

하긴, 지금 정부는 250만 모든 농민을 비국민 취급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농정분야 최고책임자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적폐관료를 농정분야 최고책임자로 세울 수 없다. 정부가 비국민으로 여기는 250만명. 나는 그 중 5%인 약 12만여명, 한때 ‘빨갱이’였다가 이젠 ‘비국민’이기까지 한 그들의 이야기를 더 열심히 듣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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