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지방분권은 지역주도 농촌개발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가?

  • 입력 2019.08.25 18:00
  • 기자명 김태연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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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단국대 교수

문재인정부에 들어 지방분권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농촌개발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금까지 일반농산어촌사업의 일환으로 주로 농식품부에서 공모제 형식으로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서 지원했던 사업들이 2020년부터 대부분 지자체로 이양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기존 농식품부에서 추진하던 마을만들기, 기초생활인프라 정비, 농촌다움 복원, 농촌현장 포럼, 농촌형 공공임대주택 시범사업, 농촌재능나눔 사업, 기타 협업 등의 사업이 지자체로 이양된다. 이들 사업에 대한 총 예산은 약 4,387억원이다. 농식품부에 추진 권한이 남아있는 사업은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 △기초생활거점 사업 △농촌 신활력 플러스 사업 △시군 역량강화사업 등 4개 사업이고 이들에 대한 예산은 약 4,869억원이다. 여전히 농식품부 농촌개발 사업 예산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지자체로 이양되는 사업의 수와 예산액을 고려했을 때 매우 파격적인 권한 이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자체에서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지역별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지역발전을 추진하도록 하는 지방분권은 기본적으로 세계적인 지역개발 정책의 추세를 따르는 적절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의 권한 이양이 주로 중앙정부 시행 정책의 폐해가 지역에 나타나면서 이를 지방정부가 개선하려는 노력에 의해서 실현된 것임으로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지방분권 추진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개혁해야 할 몇 가지 사안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 사용 지침의 경직적 적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도 많은 사업 예산이 시군에 교부되고 있지만 실제 시군에서 사업시행을 위해 예산을 지출할 때는 중앙부처에서 제시하는 예산회계 관련 지침에 따라서 시행하고 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민원이나 감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담당자들이 사업 추진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신축적으로 사업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위 우리나라의 포괄예산제도가 벤치마킹했다는 영국의 단일예산제(Single pot budget)는 부처별로 받은 예산이 지역에서는 한 계좌에 들어와서 부처별 꼬리표 없이 자율적으로 사용되는 체계이다. 즉, 지자체에 예산 사용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농촌개발 정책의 지방이양 과정에서 함께 도입돼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역의 농촌개발 정책 추진 방식을 중앙부처에서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지역에서 지자체장이나 의회 의원들 마음대로 사업을 추진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지역의 특권세력이나 유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맘대로 농촌 개발사업을 추진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농촌개발 사업에 대한 지역 여론 수렴 절차, 추진 단체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의사결정 및 실행 체계, 집행과정에 대한 보고 및 점검 체계, 공개적인 평가 체계 등 농촌개발 사업의 지역적 추진체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중앙정부에서 사업 시행 지침으로 제시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이 과정에서 적용하는 원칙들이 소위 파트너십 원칙, 이해 관계자 참여의 원칙, 회의 내용 공개의 원칙, 각종 결정 사항에 대한 주민의견 수렴의 원칙 등이다. 이와 함께 사업 추진과정의 점검 및 사업 영향 평가를 위한 방대한 지침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농촌개발 사업을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체제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협력을 유도함으로써 실질적인 포용적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원칙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 추진 원칙을 준수하면서 지향해야 하는 것은 민간주도로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자체가 예산을 갖고 또 담당자가 예산 지출에 대해 책임진다고 해서 사업추진 과정에서 해당 관료가 최종 결정을 하도록 하는 관료적인 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관료 중심의 사업 추진 체계에서 벗어나 민간 협의체가 중심이 되고, 관련 공무원은 해당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국한된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산의 자율적 사용, 추진 체계의 명확한 제시, 민간주도의 사업 추진 등이 선진국 지역주도 농촌개발 사업의 공통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지방분권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예산의 방만한 사용을 통제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역할 유지, 지자체별로 자율적인 추진 체계의 수립, 사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행정관료 주도의 사업 추진 등의 방식으로 지방분권이 추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방의 역량을 고려한 신중하고 단계적인 지방분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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