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그새 자랐나

  • 입력 2019.08.18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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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웽~웽~치지찍, 숨 가쁜 기계음이 새벽의 산과 들을 깨운다. “와~ 또 풀치시는구나.” 우리집 뒤 논주인 아저씨는 주말이면 논두렁의 풀을 치신다. 축구장 잔디처럼 까까머리가 된 논두렁은 보기도 좋고, 깔끔하기도 하다.

자주 풀을 치는 아저씨는 부지런하시기도 하지만 사실상 논농사가 얼마 되지 않아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우리집 주변 풀은 숲처럼 우거지는 요즘이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풀이 참 많이 컸네” 말하면 “에휴” 남편의 한숨이 이어진다.

남편의 여름은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사과밭, 논두렁을 여름 내 돌아가며 풀베기를 해야 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여기 베면 또 저기 자라는 게 풀이라…” 지긋지긋함을 표한다.

새벽, 들에 나가 얼굴과 몸이 땀과 풀 조각으로 범벅이 되어 오는 사람에게 말로만 친환경적인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말하려니 미안한 마음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 말은 전지적 관점일 뿐이고 남편은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우리집 앞 밭 금곡띠기(댁) 할매는 2다락정도 되는 600평 밭을 혼자 농사짓는다. 걸을 때도 펴지 못할 만큼 허리가 굽어 계시지만 부지런함과 노하우로 매년 일사불란하게 농사짓고 수확을 하신다.

6월 콩을 심을 때 풀을 잡기 위해 제초제를 밭에 연속 뿌리시는데 “에공 저렇게까지 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나”라는 여러 마음이 교차하기도 하지만 제초제를 치는 할머니 탓을 하고 싶지 않다. 몇 평밖에 안 되는 내 텃밭도 풀이 무성한데 200평 넘는 할머니 콩밭은 풀을 매기에는 넓고 더군다나 우리 사회는 손으로 풀을 매는 만큼 농산물의 가치를 높여 주지도 않지 않는가.

밭에서 나오는 수익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금곡띠기 할매는 올해도 또 호미를 들고 계신다. 그녀의 삶에 박혀 있는 듯한 인내는 먹거리를 생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습관이 되어 휘어진 그녀의 등허리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강인하게도 서글프게도 보이는데, 우리를 먹여온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농민의 허리 휘어지는 인내를 삼키며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저농약 인증이 폐지되고 GAP가 도입되면서 과수원이나 논두렁의 풀을 베기보다는 제초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금곡띠기 할머니처럼 고령 여성농민들은 제초제에 기대게 되고, 농사규모가 큰 농민들도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풀치기보다는 제초제를 쓰는 것이 편하고 무엇보다 제초제를 쓰나 안 쓰나 현행 인증제도로는 차이도 없고 정책적인 뒷받침도 다르지 않다.

농민이 건강한 먹거리도 생산하고,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짓기를 원한다면 농민의 뼈 녹이는 인내에만 기대지 말고, 땅을 살리는 농민이 농민으로 오래 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보완되기를 바란다. 무제초제 직불금부터 시작하면 들녘이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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