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친환경농가들의 여름나기 … “판로 찾느라 고군분투”

  • 입력 2019.08.18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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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경마공원에서 열린 ‘바로마켓' 장터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경마공원에서 열린 ‘바로마켓' 장터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경마공원에서 매주 수·목요일마다 열리는 바로마켓을 들렀다. 전국 각지에서 온 농민들이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에서 무농약 송이버섯을 재배하는 김용숙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매주 수·목요일마다 김씨는 영양에서 과천으로 편도 4시간 이상의 거리를 막론하고 ‘무조건’ 온다. 이곳이 그의 송이버섯을 고정적으로 팔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구 시내에서 매년 추석 때 열리는 장터와 그 밖에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직거래장터 한 군데 정도를 제외하면, 고정적으로 버섯을 팔 수 있는 데는 이 곳 뿐이에요. 이 버섯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입장에선 중요한 판로죠.”

판로. 모든 농민들의 숙제다. 열심히 농사지어도 팔 곳이 없기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이 대부분이다. 친환경농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공공급식 분야가 새로운 판로로서 각광받고 있다지만, 로컬푸드를 육성하겠다는 이야기가 지자체에서 나오지만, 여전히 대다수 농민들에겐 먼 이야기다.

이번주 친환경 면에선 폭염 속에서 친환경농사 짓느라, 좁디좁은 판로를 찾느라 분투하는 친환경농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경북 포항시 죽장면에서 친환경 사과를 재배하는 윤영희씨가 지난 12일 폭염 속에서 작업하고 있다. 오른쪽 허수아비가 눈에 띈다.
경북 포항시 죽장면에서 친환경 사과를 재배하는 윤영희씨가 지난 12일 폭염 속에서 작업하고 있다. 오른쪽 허수아비가 눈에 띈다.

풀 자라면 제초제 치면 그만이라고?

경북 포항시 죽장면에서 친환경 사과농사를 짓는 윤영희씨. 그는 6년 전 남편과 귀농했다. 처음엔 1,800평 땅에 마늘, 무 등을 재배하다가 친환경 사과로 작목을 바꿨다. 제초제도 안 치고 화학비료, 발색제, 비대제, 성장촉진제, 억제제 등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농사짓고 있다.

마늘, 무 등을 재배할 땐 포항의 직거래장터에 팔았다. 윤씨 외에도 채소농가가 직거래장터에 몇 군데 더 들어왔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에 소비자들에게 ‘덤’으로 농산물을 주는 경쟁이 이뤄졌다. ‘이러다가 공멸하겠다’고 생각한 윤씨는 직거래장터를 나와 시장바닥을 돌아다녔다. 포항 북구 양학동 도로가에서 1년 동안 농산물을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과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대구의 로컬푸드 매장에 사과를 공급하고 있다. 윤씨를 포함해 해당 로컬푸드 매장에 사과를 공급하는 농가는 3농가. 한 작목 당 3농가까지 공급농가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이곳만으론 먹고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농가들도 공급하기 때문에 로컬푸드 매장엔 많은 물품을 공급할 수 없다. 그래서 각종 SNS를 통한 직거래에 나서고 있으며, 심지어 울산까지 가서 아파트 단지들을 돌며 사과를 판다.

윤씨가 수확한 사과를 트럭에 실어서 울산까지 가는 데는 편도 2시간이 걸린다. 울산 곳곳의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데, 아파트에서 사과를 팔려면 각 아파트 부녀회에 10만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이도 부족해 남편은 지금도 트럭 운전 일을 한다. 최근까지 윤씨도 공장 내 식당 일을 했다. 그러나 경기가 안 좋아짐에 따라 윤씨는 일을 그만 두고 농사 및 판로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급식이나 생협 쪽 판로는 아직 언감생심이다. 생협의 경우 작목반 형태를 구성해야 판로를 만들 수 있는데, 윤씨가 속한 작목반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사람은 윤씨뿐이다. 한때 저농약 인증을 받아 친환경농사를 시작한 집들도 있었으나, 2016년 저농약 인증제 폐지 뒤 친환경농사를 접었기에, 친환경농민을 찾기도 힘들다.

학교급식의 경우 서포항농협이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운영 중인데, 아직 지역농산물 판로 개척에 큰 기능을 못 하는 상황이다. 올해 포항시의회에서도 학교급식지원센터 측에 ‘지역 내 계약재배 농가 확대 통한 지역농산물 위주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고 시정 요구를 할 정도다.

“딸아이가 포항 시내 고등학교에 다녀요. 급식이 어떻게 나오는지 물어보면 거의 가공식품 위주랍니다. 경상도 타 지역에서 온 사과가 공급된다는데 원거리 운송 과정에서 변질된 건지 몰라도 맛이 없고 빛깔도 푸르딩딩하데요. 채소도 잘 안 나와서 딸아이를 비롯한 학생들이 변비에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윤씨는 이어 친환경농사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안 치면서 사과농사를 짓는 건 정말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병해충에도 많이 시달리죠. 올해도 탄저병 때문에 골치 엄청 썩었어요. 그 뿐이겠어요? 올 봄엔 서리, 지난달엔 갈반병 때문에 피해를 겪기도 했죠.”

윤씨는 탄저병으로 인해 반점이 생긴 사과를 몇 개 보여줬다. 사과나무에도 탄저병 걸린 사과가 달려 있었기에 윤씨는 그걸 떼어냈다. 탄저병에 걸린 사과는 무조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탄저병은 안 걸렸는데 서로 맞붙은 채 나무에 달린 사과들 중 하나도 떼어냈다. 윤씨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사과 두 개가 맞붙어서 자라면 햇빛을 제대로 못 받는 표면이 생기기에 두 개 다 품위가 안 좋아져요. 아깝더라도 하나는 쳐내야 하는 거죠.”

처음 사과 재배를 할 땐 품위 문제 때문에 소비자들이 사과를 잘 구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엔 직거래하러 다닐 때마다 사과 재배과정을 소비자들에게 설명하며 다닌 덕인지, 예전에 비해 구매자들이 좀 더 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밴드’를 통해 만난 친환경 사과농가 선배들이 재배법 관련 도움을 많이 줬어요. 농업기술센터나 면 농업상담소에서보다 이 분들에게 훨씬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오히려 농업기술센터에선 ‘재배하다 힘들면 제초제 뿌려라’는 식으로 지도하니… 공무원들이 친환경농사에 대해 농민 되길 꿈꾸는 사람들에게 올바로 지도해야 하는데, 농민들에게만 교육 책임을 돌리는 듯해서 답답합니다.”

‘친환경’ 스티커 떼고 넘긴 방울토마토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서 유기농 토마토 농사를 짓는 정진씨와 김태호씨는 각각 2010년, 2013년에 귀농했다. 정씨와 김씨를 비롯한 청천면 9개 농가(모두 귀농 농가들)들이 힘을 합쳐 ‘청천유기농’이라는 작목회를 구성했다. 그 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판로를 뚫기 위한 전쟁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팔 곳을 못 찾아 공판장이나 시장으로 생산물을 팔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500g 한 팩에 4,300원은 받아야 손해를 안 볼 수 있는 방울토마토를 대전의 시장으로 공급했던 적이 있다. 새벽시장이 열리면 경매사들이 정씨와 김씨에게 한 팩 당 얼마에 팔렸는지 문자로 보낸다. ‘2,700원’, ‘1,200원’, ‘1,100원’… 날이 갈수록 가격은 떨어졌다. 상차비·하차비 수수료는 꼬박꼬박 나갔다.

“친환경농산물을 시장에 출하하면 이게 친환경농산물인지 아닌지 신경을 안 써요. 그러다보니 나중에 가선 스티커가 아까워서 무농약, 유기농 스티커도 붙이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이 반복됐죠. 2016년엔 방울토마토 생산했던 걸 다 베어버리고 땅에 파묻었어요.”

한살림, 아이쿱 등 생협들에 판로를 직접 뚫으려는 시도도 했지만 그것도 어렵다. 김씨는 “이미 생협의 파이는 완성돼 있기에 더 많은 농가가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100등분 된 파이를 새로운 농가가 들어가면 다시 101등분해야 하는데, 생협들 입장에서도 소비단위가 대대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농가를 더 받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친환경 가공식품 분야로도 판로를 찾아봤다. 정부에선 해썹(HACCP)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해썹 받는 데만도 최소 2,000만원의 비용이 들기에 농가들로선 시도조차 어려웠다. 한때 청천유기농에선 무와 시래기 등을 유기가공식품으로 만들어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졌으나 이내 접었다. 유기가공인증을 받기 위해선 여러 시설을 내고 그에 따른 허가도 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실상 ‘공장을 하나 만드는 수준’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정씨는 “200~300만원어치 팔고자 최소 500만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야 했던 상황”이라 설명했다. 공장 내에 하수처리 시설까지 정밀하게 설계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농식품부에 제출하면서 유기가공식품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최종심사에서 합격까지 해야 겨우 인터넷에서 ‘유기가공식품’ 마크를 달아 판매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래서 괴산 친환경농민들은 괴산군 측에 유기농산물 가공센터라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지자체에서 최근 로컬푸드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괴산군엔 최근까지도 로컬푸드 매장 하나 없었다. 2017년 10월에야 괴산군 사리면에 로컬푸드 매장이 하나 생겼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지역 농산물은 제대로 된 판로를 찾기 힘들다. 그나마 ‘프리마켓’, ‘문전성시’ 등의 직거래장터가 열리는데 이 또한 2주일에 한 번 열리는 정도다.

정씨와 김씨는 “그래도 우린 사정이 나은 축”이라 강조했다. 그나마 최근부터 작목회에서 생산한 방울토마토, 애호박, 고추, 대파 등의 70% 가량을 경북 상주시의 토리식품 등 식품업체들에게 공급한다. 그러나 나머지 30%의 판로는 여전히 찾기 힘들다.

김씨는 “개별 농가나 소규모 작목회의 힘만으로는 먹거리체계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걸 절감한다. 이에 최근 농민들이 모여 푸드플랜의 전반적 변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괴산먹거리연대’ 조직화에까지 나서게 된 것”이라며 “작목 재배 농가들이 뭉쳐서 생산자조직을 만들어야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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