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대통령’ 농협중앙회장 … 누가 누가 거쳐갔나

정부임명 회장으로 관제조직화
선출제 전환 후엔 비리 줄이어

  • 입력 2019.08.18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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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1961년 구 농협과 농업은행이 합쳐져 농협중앙회(종합농협)가 발족한 이래 지금까지 23대에 걸쳐 16명의 인물이 농협중앙회 회장석에 앉았다. 그러나 ‘농업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에 비춰봤을 때 조합원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사례는 꼽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우리 농협은 농민들의 협동이 만든 상향식 조직이 아닌, 정부가 주도해 만든 하향식 조직이라는 태생적 결점을 갖고 있다. 선출제 이전 정부가 임명한 중앙회장들의 면면을 보면 농협의 관제적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출발이 군사독재 시기였던 만큼 1·2대 회장엔 현역 군인이었던 임지순·오덕준씨가 임명됐다. 다만 재임기간은 합쳐서 채 1년이 되지 않았고, 재무부와 한국은행 이력이 있는 금융전문가 이정환·문방흠 회장이 3·4대로 뒤를 이었다.

5대부터 13대까지의 회장 자리는 관료들의 몫이었다. 5대 신명순·7~8대 김윤환·9대 권용식 회장은 지방관료로 각각 충북·충남·제주도지사를 역임한 인물이었고, 6대 서봉균 회장은 재무부장관, 10대 장덕희·11대 이득용·12~13대 윤근환 회장은 농수산부 및 그 산하기관에서 차관급 직책을 맡았던 인물들이다. 이들이 재직한 1960~1980년대에 농협은 관제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공고히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아직까지 농협의 정체성을 흔드는 뿌리깊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농수산부 차관급이 회장을 맡으며 농수산부의 하위기관 격으로 치부됐던 농협중앙회지만 선출제 이후 조금씩 독립성을 회복하고 있다. 다만 선출직 회장들의 비리 행렬은 농협에게도, 농민에게도 뼈아픈 역사다. 사진은 지난 2016년 20대 국회 농해수위 첫 업무보고에 출석한 김병원 회장과 이동필 당시 농식품부 장관.한승호 기자
과거 농수산부 차관급이 회장을 맡으며 농수산부의 하위기관 격으로 치부됐던 농협중앙회지만 선출제 이후 조금씩 독립성을 회복하고 있다. 다만 선출직 회장들의 비리 행렬은 농협에게도, 농민에게도 뼈아픈 역사다. 사진은 지난 2016년 20대 국회 농해수위 첫 업무보고에 출석한 김병원 회장과 이동필 당시 농식품부 장관.한승호 기자

1989년 농협중앙회장이 선출직으로 전환되면서 민주농협의 깃발이 세워지고 이 때부터는 농협 출신 적통들이 회장직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서 깊은 농협중앙회장 비리의 역사 또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14~15대 한호선 회장은 지역농협 서기 출신으로 최초의 선출직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UR 협상 시기 농산물 개방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중앙회 공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함으로써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4년) 선고를 받았다. 하나로마트의 창시자인 16~17대 원철희 회장 또한 비자금 조성으로 퇴임 후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18~20대 정대근 회장은 첫 조합장 출신 중앙회장으로 주목받았지만 결국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매각 등의 과정에서 뇌물수수 혐의가 적발돼 징역 5년의 실형을 살았다. 역대 최장기간 재임했던 21~22대 최원병 회장도 2012년 업무상 배임에 이어 임기 말 특혜대출과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였고, 비록 본인은 혐의를 벗었지만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심판받는 불명예를 입었다. 또한 현직인 23대 김병원 회장은 임기 초반부터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아 1심에서 벌금 300만원형을 받고 현재 2심을 진행 중이다.

30년 관제조직의 굴레를 벗고 간신히 선출제로 자립한 농협중앙회지만, 선출직 회장들은 줄줄이 비리와 의혹에 연루되며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있다. 보다 공정한 선거제도와 참신한 인물에 대한 필요성이 매번 부각되고 있지만 조합원들의 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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